개그우먼 이수지는 인터뷰를 하는 한 시간도 안 되는 사이 가수 싸이도 됐다가 배우 김고은이 되기도 하고, 대치동 엄마였다가 성형외과 상담실장이 되기도 했다. 현실에 있을 법한 캐릭터를 현실감 넘치게 묘사하는 그에겐 ‘인간 복사기’란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지난 26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이수지는 “제가 가장 힘들어하는 게 스케줄 없이 집에서 쉬는 건데, 스케줄이 많아진 덕분에 요즘 너무 행복한 하루들을 보내고 있다”고 웃으며 말문을 열었다. 최근엔 초등학생 두 명이 지나가며 “돈 두 댓, 하지 않아요~”라고 말하는 걸 보고 인기를 실감했다고 한다.
그의 말처럼 요즘 이수지는 소위 말해 ‘물 만난 물고기’다. 올 초 개설한 유튜브 채널 ‘핫이슈지’는 구독자가 78만여명에 달하고, 최근 업로드한 ‘제이미맘’ 영상은 7일 만에 조회수가 246만회를 돌파했다. 이밖에도 드라마 ‘신병’, 쿠팡플레이 시리즈 ‘직장인들’, ‘SNL코리아’ 등에서 활약하고 있다. 이 기세를 발판 삼아 지난달에는 백상예술대상 여자 예능상을 받았다.
이수지가 선보인 많은 캐릭터가 대중에게 사랑을 받았지만, 요즘 가장 유명한 캐릭터를 꼽으라면 단연 ‘제이미맘’일 것이다. 그의 유튜브 채널에서 선보인 대치동 엄마 캐릭터인 제이미맘은 늘 명품 옷과 가방을 걸치고 나긋나긋한 말투를 쓰며 아이에게 “돈 두 댓, 하지 않아요”라고 말한다. 짧은 영어를 섞어 교양을 드러내고, 타인을 배려하는 척 갑질하는 모습을 그린 것에 ‘주변 누군가를 떠올리게 한다’며 공감하는 댓글이 줄을 잇는다.
하지만 화제성이 높은 만큼 논란도 뒤따랐다. 제이미맘이 학원 라이딩을 하는 배우 한가인을 모사한 것 아니냐는 반응이 나오며 엉뚱하게도 불똥이 한가인에게 튀었고, 대치동 엄마들을 지나치게 희화화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이에 대해 이수지는 “제이미맘은 특정인을 겨냥한 게 아니라 일반적으로 공감할 만한 가상의 캐릭터를 만든 것”이라면서도 “오해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아쉽기도,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이제는 콘텐츠를 만들 때 한 번 더 고민해보게 됐다”고 말했다.
다만 최근의 논란으로 창작에 제한을 두고 싶지 않다는 의견은 분명히 했다. 이수지는 “이런(개그 소재) 것들을 창작하면서 오해나 아쉬운 부분이 생길 수 있다는 고민을 배제할 수는 없는 것 같다”면서도 “그걸 우위에 두면 창작이 막히는 것 같다. 그래서 다수가 웃을 수 있는 캐릭터를 먼저 만들고, 그 뒤에 누군가 불편해할 수 있는 지점에 대해 고민한다”고 밝혔다.
이수지 창작의 원천은 일상에서 나온다. ‘많은 사람이 공감하겠다’ 싶은 말투나 행동을 포착해 극대화하고 웃음 포인트를 넣는 식이다. 이수지는 “항상 일상에서 (눈과 귀가) 열려 있다. 마트나 식당, 카페에 가더라도 이어폰을 최대한 끼지 않고, 많은 사람에게 공감대를 형성할 만한 말투나 행동을 보면 메모장에 써두는 편”이라고 설명했다.
다른 사람의 특징을 관찰하고 모사해 연기하는 게 ‘즐거운 취미’라고 한 이수지는 앞으로도 다양한 캐릭터를 만들어 선보이고 싶다는 포부를 내비쳤다.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정극 연기에 도전해보는 것도 목표다. 이수지는 “‘지독하다’는 표현이 가장 듣기 좋더라. 저를 믿어준다는 의미로 들려서 행복하다”며 “앞으로 다양한 분들이 불편함 없이 웃을 수 있는 코미디를 만드는 게 제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진영 기자 yo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