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영옥의 컬처 아이] 대선 후보 벽보와 현수막, 누가 잘했나

입력 2025-05-29 00:32

제21대 대통령 선거 후보자의 선거 벽보가 전국 8만2900곳에 붙었다. 하지만 TV토론과 SNS 홍보가 지지율에 큰 영향을 미치는 시대라 벽보는 홍보 수단으로서의 힘을 상실한 것 같다. 무엇보다 형식이 진부하다.

대한민국 정치사에 지금 같은 레이아웃의 벽보 포스터가 등장한 것은 1963년 5대 대통령 선거부터다. 민주공화당 박정희 후보와 신민당 윤보선 후보의 대결 구도였다. 박정희는 후보자 얼굴을 지면의 3분의 2만큼 키우고 후보자 이름, 정당 이름, 기호 번호, 캐치프레이즈만 들어가는 ‘이미지 광고’를 했다. 윤보선은 포스터 지면의 반 이상을 글로 채우는 ‘문장식 광고’를 했다. 선거에서 박정희가 이기기도 했고, 간명해서 호소력이 강했던 박정희 벽보 스타일이 공식처럼 되풀이되고 있다. 이번 대선에서도 그랬다. ‘내란 대선’이라는 특수 상황이라 시간 부족도 있었겠지만 19대 대선에서 안철수 측이 낸 ‘당명 빠진 파격 포스터’ 같은 신선한 시도는 없었다. 모든 후보가 60여년 전 형식을 답습했다.

그럼에도 벽보는 디자인 변용을 통해 현수막 버전으로 이어지기에 중요하다. 현수막은 가장 강력한 오프라인 홍보처인 도심 사거리 횡단보도 등에 내걸려 표심을 건드린다. 이 글에서는 군소 후보는 제외하고 대선 후보 TV토론에 나온 4명 후보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먼저 벽보의 경우 눈에 잘 들어오는 정도에서는 기호 4번 개혁신당 이준석과 기호 5번 민주노동당 권영국이 낫다. 둘 다 당 상징색인 오렌지와 노랑을 배경에 깔았다. 소수당이라 존재감을 부각시켜야 했을 테다. 기호 2번 국민의힘 김문수는 번호에만 당 상징색 빨강을 썼다. 기호 1번 더불어민주당 이재명은 당 상징색인 파랑을 전략적으로 뺀 거 같다. 외려 직접 유세장에서 강조한 것처럼 선거 포스터에 (모서리 삼각형으로) 빨강도 넣었다. 보수 구애를 위해 유세장에서 보수당인 국민의힘 빨강을 넣은 ‘빨강+파랑’ 운동화를 신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벽보는 디자인이 비슷한 만큼 문구가 중요하다. 문구는 특히 현수막에서 생명력을 발휘한다. 권영국의 ‘갈아엎자 불평등 세상’은 민주노동당의 존재감과 정치 이념을 구호처럼 분명히 드러낸다. 이준석의 ‘미래를 여는 선택’ ‘새로운 대통령’은 동어 반복의 느낌이 강하다. 제3지대 보수정당이 추구하는 가치가 안 보인다. 정책 없는 갈라치기 선수라는 비판을 들은 TV토론에서의 태도가 묻어난다.

이재명의 ‘지금은 이재명’은 지금이 내란으로 촉발된 위기 국면이라는 점, “색깔은 상관없다. 일 잘하면 됐지”라는 실용 노선 추구 등을 효과적으로 드러낸다. 다만 ‘이제부터 진짜 대한민국’에서 무엇이 진짜 대한민국인지가 모호하다. 그럼에도 라이벌 김문수가 따라해 역설적으로 성공작이 됐다. 김문수는 벽보에 ‘정정당당’ ‘새롭게 대한민국’을 내세웠다. 정정당당은 ‘윤석열 쿠데타’ 명분이었던 ‘대선 부정선거’ 주장에서 가져온 거 같다. 이게 안 먹힌다는 판단을 한 건지 이재명 따라하기를 한다. 언제부턴가 ‘정정당당’은 사라지고 ‘알고 보니 진짜는 김문수’가 대신 적히기 시작했다.

이재명의 현수막은 치고나가는 여유가 느껴진다. 현수막에 지역별로 공약을 병기했다. 예컨대 ‘광화문·종로 집회 시위 소상공인·주민 피해 보상 모색!’ ‘교육도시 송파지원’ 등 동네별로 공약을 달리해 ‘지금은 이재명!’과 나란히 적었다. 김문수 측이 따라한 걸 서울 남부터미널 현수막에서 목격했다. 따라하면 ‘상대방의 프레임에 갇힌’ 거다. 상대의 메시지를 강화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이재명은 현수막 새 버전을 내놓았다. ‘지금은 이재명! 사전투표로 내란 종식!’ 김문수의 대응이 궁금하다.

손영옥 미술전문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