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 낭만의 경제적 가치

입력 2025-05-29 00:33

스포츠에 서사가 더해지면 파급력은 어마어마하게 커진다. 팀의 이름이 세계에 각인될 뿐만 아니라 막대한 경제적 가치까지 얻는다. 8년 만에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에 복귀한 선덜랜드 AFC가 그렇다. 이들의 승격이 화제가 된 데에는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죽어도 선덜랜드’가 한몫했다. 선덜랜드는 해외 축구를 즐겨 보는 팬들에게도 별다른 매력이 없는 팀이었다. 2010년대 중반까지 EPL에 머물렀지만, 중하위권을 전전했다. 기성용과 지동원이 한때 몸담았기에 한국팬들에게 낯설지 않은 정도였다.

하지만 ‘죽어도 선덜랜드’가 나오면서 얘기가 달라졌다. 이 다큐를 만든 제작사 펄웰73의 핵심 인력들은 선덜랜드의 오랜 팬이다. 이들은 2부 리그로 추락한 선덜랜드가 EPL에 복귀하는 걸 기원하며 다큐를 제작했다. 2018년 시즌1부터 지난해 시즌3까지 나왔다. 하지만 다큐는 승격 성공기가 아니라 오히려 3부 리그로 추락하는 등 실패하는 걸 가감 없이 담아 큰 화제를 모았다.

잉글랜드 북동부 타인위어주에 있는 도시 선덜랜드는 과거 조선업과 광산업이 번창하던 도시였다. 하지만 산업이 쇠퇴하면서 지역경제는 침체했다. 이 도시에 유일한 위안거리는 축구팀 선덜랜드다. 도시처럼 선덜랜드 역시 과거의 영광에 멈춰 있다. 1879년 창단한 선덜랜드는 프리미어리그에선 1935~36시즌 우승이 마지막이고, FA컵 우승은 1972~73시즌이 끝이다. 선덜랜드는 2016~17시즌 리그 최하위를 기록하며 2017~18시즌에 2부 리그인 EFL 챔피언십으로 강등됐다. 그 뒤로 선덜랜드를 다신 프리미어리그에서 볼 수 없었다.

하지만 팬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어려운 여건에도 시즌권을 구매해 경기장을 찾았고, 열광적인 응원을 보냈다. 강등된 이후에도 평균 관중이 3만명에 달할 정도였다. 마침내 팬들의 염원이 이뤄졌다. 선덜랜드는 지난 25일 영국 런던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셰필드 유나이티드와의 챔피언십 승격 플레이오프 결승전에서 2대 1로 승리하며 EPL 승격을 확정했다. 이번 승격으로 선덜랜드는 최대 2억2000만 파운드(약 4000억원)의 수익을 얻게 됐다. ‘죽어도 선덜랜드’ 시즌4가 나온다면 마침내 EPL에 복귀하는 선덜랜드의 모습을 담을 수 있다. 전 세계 축구팬들은 다음 시즌 EPL에서 선덜랜드의 행보를 유심히 지켜볼 것이다. 그들이 받는 관심만큼 수익도 늘어날 게 분명하다.

낭만이라고 하면 손흥민도 빼놓을 수 없다. 2015년 토트넘으로 이적한 손흥민은 유로파리그 우승컵을 들어 올리며 프로 통산 첫 우승을 차지했다. 사실 토트넘의 최전성기는 챔피언스리그 준우승을 차지한 2018~19시즌이었다. 델리 알리, 크리스티안 에릭슨, 손흥민, 해리 케인 등 ‘DESK 라인’으로 불린 공격수 4인방은 어느 팀과 견주어도 경쟁력이 있었다. 하지만 리버풀에 패해 준우승에 만족해야 했다. 그리고 우승을 위해 다른 팀으로 하나둘 떠났다. 당시 멤버 중 토트넘에 잔류하고 있는 건 손흥민뿐이다. 손흥민도 원한다면 다른 팀으로 갈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2023년부터 주장 완장을 차고 팀의 중심을 잡았다. 이제 그는 떠나지 못한 선수가 아니라 떠나지 않은 선수로 불린다. 팬들도 이제 손흥민을 ‘레전드’로 부르는 데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토트넘은 이번 유로파리그 우승으로 다음 시즌 챔피언스리그 출전권을 획득했다. 최고의 무대에 복귀한다는 자부심에 더해 막대한 경제적 이익까지 누리게 된다. 토트넘은 중계권 수익, 추가 스폰서십 등을 포함해 약 1억 파운드의 추가 수익을 거둘 것으로 예상된다. 끝까지 자리를 지킨 손흥민의 헌신이 팀에 엄청난 미래를 선물한 셈이다.

김준엽 문화체육부장 snoop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