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1학년생 딸과 함께 지난 23일 서울 종로구 창경궁에서 열린 ‘궁궐 달빛 동행’에 참여했다. 서점을 함께 갔다가 사 준 만화책 ‘이순신’을 읽고 난 뒤 한국 역사에 부쩍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딸을 위한 나들이였다.
‘궁궐 달빛 동행’은 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며 밤에 조명이 밝혀진 고궁을 거니는 행사다. 흐린 날씨에도 불구하고 많은 관광객이 수백년의 역사를 간직한 이곳을 찾았다.
조선 시대 경복궁과 창덕궁에 이어 세 번째로 지어진 궁궐인 창경궁은 제 9대 임금 성종이 세 명의 대비를 위해 1483년(성종 14년)에 건립했다. 일제강점기에는 식물원과 동물원이 들어선 유원지로 변해 ‘창경원’이라 불렸지만 1983년 복원 작업이 시작되며 본래 이름인 ‘창경궁’을 되찾았다.
아이 손을 잡고 해설사의 이야기를 들으며 고즈넉한 고궁을 걷다 보니 마음이 차분해졌다. 해 질 녘 은은한 조명 아래 전각마다 담긴 이야기와 창살 무늬가 한층 더 깊게 다가왔다. 낮의 화려함과는 또 다른 밤의 고요한 아름다움 속을 걷는 순간들을 핸드폰에 담았다.
특히 눈길을 끈 곳은 창경궁의 정문 ‘홍화문’이었다. ‘널리 교화한다’는 뜻의 홍화문은 왕과 백성이 소통하던 상징적인 공간이다.
“조선시대에 영조(1724~1776)라는 왕이 있었어요. 이 임금님은 백성이 힘들게 사는 걸 늘 걱정했어요. 그때도 나라를 지키기 위해 많은 남자들이 군대에 가야 했는데, 군대에 가지 않는 사람들은 옷 만드는 천 2장(베 2필)을 나라에 내야 했어요. 지금으로 치면 세금과 같은 거예요. 이로 인해 백성들이 힘들어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영조는 홍화문 밖으로 나가 양반부터 평민까지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리고 백성들이 천 1장만 낼 수 있도록 하는 새 법 ‘균역법’을 만들었어요.”
해설사의 설명을 듣던 딸이 고개를 돌려 조용히 물었다. “엄마, 우리 대통령도 홍화문에 와 봤으면 좋았을 텐데….” 대통령 탄핵 과정을 뉴스를 통해 고스란히 지켜본 8살 아이의 엉뚱하면서도 뼈 있는 말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
한편으론 대통령 탄핵으로 인한 조기 대선을 역사상 두 번째 앞둔 지금, 백성과 소통하며 균역법을 실천했던 영조의 모습이 결코 먼 과거의 이야기로만 느껴지지 않았다.
대통령의 탄핵 이후 주변 사모들과 단톡방에서 나라와 교회를 위한 중보기도로 마음을 모아왔다. 정치적 양극화가 교회 안까지 번지는 모습을 보며 결국 기도만이 우리의 믿음을 붙들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절실히 느꼈기 때문이다.
각자의 정치적 입장을 담은 메시지와 가짜뉴스를 퍼 나르거나 특정 집회 참여를 강요하는 성도들, “사모님 좌파세요 우파세요”라고 묻는 당황스런 질문들 앞에서 사모들은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대신 침묵과 기도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대통령 선거가 어느덧 3일 앞으로 다가왔다. 투표는 소리 없이 내 마음을 전하는 가장 평화로운 표현이다. 목소리를 내는 것이 꼭 크고 시끄러워야 할 필요는 없다. 조용히 눌러 찍은 한 표는 그 어떤 외침보다 더 큰 울림을 남긴다. 우리가 마주할 미래,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이 어떤 모습이길 바라는지 생각하며 그 믿음을 안고 투표장에 나서야 한다.
창경궁을 나오면서 딸 아이에게 “어떤 사람이 왕이 되면 좋겠니”라고 물었다. 잠시 고민하는 듯하던 딸은 눈을 반짝이며 “착하고 백성들 말 잘 들어주는 사람”이라고 답했다.
백성의 말을 기꺼이 들었던 옛 임금처럼, 새롭게 세워질 지도자 역시 하나님을 경외하며 국민의 목소리에 진심으로 귀 기울일 줄 아는 사람이 되기를 기도한다.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함으로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라.”(딤전 2:1~2)
글·사진=박효진 기자 imher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