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덕분에 어린 시절부터 다양한 문화와 언어를 접할 수 있었습니다. 교회를 통한 국제적 경험은 훗날 시카고 유학의 밑거름이 됐지요.”
미숙아로 태어나 생사의 갈림길에 섰던 아이. 아버지의 간절한 기도와 신앙은 꺼져가던 생명의 불씨를 살리는 기적이 됐다. 부산대교회 장로이자 부산 파파클럽 대표섬김이, 부산기독교총연합회(부기총) 이사 등으로 지역과 교계를 섬기고 있는 정동수(57) 하버드센트럴치과 원장의 삶은 그렇게 신앙의 뿌리 위에서 시작됐다.
그의 어린 시절은 교회학교 교사였다가 나중에 목회자가 됐던 아버지의 영향 아래 새벽기도와 교회학교 생활로 채워졌다. 당시 그가 다니던 교회는 700명에서 2만5000명으로 성장했는데 교회의 부흥은 그의 신앙에 든든한 자양분이 됐다. 정 원장을 최근 부산 사상구 하버드센트럴치과에서 만났다.
신앙, 삶의 나침반 되다
정 원장의 삶은 신앙과 함께였다. 30년 넘게 치과 의사로 일하며 수많은 환자를 만났다. 때때로 의학적으로 불가능해 보이는 상황에서도 기적 같은 치료 결과를 목도하며 기독교 신앙의 힘을 더 확신하게 됐다. 그의 병원은 찬양이 흐르는 편안한 공간이다. 30년 경력의 노련함으로 안정적인 진료를 추구하면서도 환자와 스스럼없이 소통하며 자연스럽게 복음을 전한다.
정 원장은 “단순히 눈앞의 치료에 급급하기보다 환자의 장기적인 결과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것은 30년 전 제 진료 방식의 큰 차이점”이라고 했다. 정 원장은 경제적 어려움으로 치료를 망설이는 환자들에게도 먼저 필요한 진료를 제공하고 있다. 치료비는 그다음으로 장기 계획을 세워주면서 신앙에 기반한 의료 철학을 실천하고 있다.
정 원장은 부산 지역의 의료 및 선교 현황에도 큰 관심을 갖고 있다. 그는 “부산은 외국어대학교와 부산대학교 설립 배경에 기독교 정신이 깃든 곳이며 6·25 전쟁 당시 수많은 피난민을 품었던 기도의 도시”라고 했다. 정 원장은 부산을 거쳐 간 선교사들의 헌신을 기억하고 있다. 그는 부산 지역 1800개 교회의 연합과 협력을 위해 부기총 대외협력위원장으로서 힘쓰고 있다. 특히 청소년 등 다음세대 신앙 전수를 위해 열정을 쏟고 있다.
그는 “어릴 적부터 신앙 훈련을 받았지만 인격적인 신앙 체험은 대학 시절 찾아왔다”며 “자녀의 신앙 문제로 고민하며 미국 유학과 하버드대에서의 학업을 통해 신앙에 대한 깊은 갈증과 성찰의 시간을 가졌다. 나이가 들면서 분석적인 학문과 성경의 깊이를 통합적으로 이해하게 됐고 과학과 신앙이 갈등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과학의 진보가 성경을 더 깊이 이해하는 해설서가 될 수 있음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고난 속에서 피어난 응답의 기적
그렇다고 정 원장의 삶에 시련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특히 그동안 진행한 파파클럽 활동 중 최근 2년은 인생의 격랑과 같았다. 120억원이라는 엄청난 부채가 그의 숨통을 조였고 코로나19 팬데믹은 재정적 어려움을 극단으로 몰고 갔다. 정 원장은 당시를 회상하며 “정말 죽고 싶을 만큼 힘들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붙잡은 것은 기도와 금식이었다”고 했다.
그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더 간절히 하나님께 매달렸다. 금식 기도 중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믿음이 성숙하는 경험을 했으며 오산리최자실기념금식기도원에서도 낯선 이의 친절한 행동을 통해 세밀한 하나님의 응답을 체험하며 신앙의 본질을 다시금 깨달았다. 놀라운 일은 계속 이어졌다. 지난해 코스타(KOSTA·청년 수련회) 행사에서 만난 미국 할리우드 특수 촬영전문가 스티븐 오를 현재 병원을 개원하고 첫 환자로 치료한 것이다.
정 원장은 스티븐 오에게 임플란트 시술을 하루 만에 끝냈는데 미국으로 돌아간 오씨가 정 원장과 한국 치과 기술을 극찬하면서 소문이 퍼졌다. 이후 한 친구의 제안으로 울산의 국가 소유 토지를 감정가보다 낮은 가격에 매입하는 기회를 얻었다. 어려운 자금력이었음에도 믿음으로 투자를 결정했고 현재는 주차장으로 부지를 사용하며 임플란트 공장 건설을 계획 중이다. 정 원장은 “해운대 백사장에서 열렸던 10만명 기도회의 감동적인 현장을 목격하며 품었던 기도에 대한 응답”이라고 고백했다.
세계로 나아가는 K-덴티스트의 꿈
정 원장은 선천성 심장 질환을 안고 태어났다. 하지만 어머니의 헌신적인 사랑과 기도로 건강을 회복하고 하버드대 치과대학에 합격하는 등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어 왔다. 그는 “어려움을 통해 얻은 신앙 성장이 제 인생의 가장 큰 자산”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제 임플란트 분야의 세계적인 리더십을 꿈꾼다. 그는 “향후 5년 또는 10년 안에 한국의 치과 진료가 세계 최고 수준으로 인정받도록 기여하고 싶다”고 비전을 밝혔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신앙 유산에서 시작된 그의 삶은 이제 고난을 통해 더 단단해진 믿음 위에서 한국 치과 의료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고 세상을 섬기는 더 큰 비전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부산=글·사진 정홍준 객원기자 jonggy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