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총통 시대

입력 2025-05-29 00:40

청나라는 미국 대통령 명칭을 어떻게 부를지 고심했다. 처음엔 프레지던트의 중국어 표기인 ‘백리새천덕(伯理璽天德)’으로 시작해 ‘대두목(大頭目)’을 거쳐 ‘총통(總統)’으로 이어졌다. 나중엔 청나라 왕조를 무너뜨린 위안스카이는 ‘대총통’으로, 신해혁명을 일으킨 쑨원도 총통으로 불렸다. 지금도 중국은 다른 나라 대통령을 총통으로 표기한다.

하지만 총통은 국내에선 주로 독재자라는 부정적 의미로 인식된다. 2차 세계대전 주범 아돌프 히틀러 영향이 크다. 일본에서 히틀러 직책인 퓌러(지도자 겸 수상)를 총통으로 번역했고 우리가 받아 썼다. 한·중 수교 후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할 때마다 중 언론의 ‘총통’ 호칭에 여론이 부글대자 외교부가 골머리를 앓았다. 1998년 김대중 대통령 방중에 앞서 외교부가 중 당국에 “호칭을 총통 대신 대통령으로 해줄 것”을 요청했다.

선거판에서 총통이 거론된 건 1971년 대선 때다. 신민당 김대중 후보는 유세에서 “정권교체를 못하면 박정희씨의 영구 집권 총통 시대가 온다”고 말했다. 쿠데타로 집권한 정권의 이력, 허약한 민주주의 기반 탓이려니 했다. 그런데 반세기 후 민주주의가 만개한 요즘 총통 용어가 다시 소환됐다. 대선 막바지 국민의힘과 개혁신당에서 지지율 1위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를 겨냥해 “총통 독재” “총통 시대를 막겠다”고 외치고 있다.

열세 후보들의 트집으로 보이나 이 후보와 민주당이 자초한 면도 있다. 거대 야당 대표 이 후보가 당선되면 행정부와 입법부를 좌우한다. 이것도 엄청난데 사법부 장악까지 시도했으니 절대권력 우려가 커졌다. 뒤늦게 비법조인의 대법관 임명, 대법관 100명 증원 등 일부 법안을 철회했지만 작전상 후퇴로 비친다. 대법원장 특검법, 대통령 재판중지법 등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난데없는 계엄으로 국격을 추락시킨 대통령 뒤를 총통형 대통령이 잇는다면 국제 사회는 우리를 어떻게 볼까. 사법부 독립은 불변이고 사법제도 개선은 여야 합의로 하겠다고 이 후보가 선언해야 한다.

고세욱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