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통팔달 ‘나라의 중심’ 충북 충주… ‘중원 삼국지’ 산성길… 역사 따라 걷는다

입력 2025-05-29 02:14
충북 충주시 살미면 향산리 대림산성 정상 봉수대 뒤로 아침 해가 솟아오르고 있다. 괴산 연풍의 주정산 봉수와 충주 대소원면의 마산 봉수를 연결하던 곳이다. 이곳에서 조망하는 충주 시내 야경도 일품이다.

충북 충주는 ‘중원(中原)’으로 불린다. ‘나라의 중심’으로 사통팔달 교통의 요충지여서 삼국시대부터 누구나 탐내던 경쟁의 땅이었다. 고구려·백제·신라가 바꿔가며 차지했다. 중원을 차지하면 곧 한반도의 패권도 가지게 됐다.

최초 주인은 백제였다. 이후 5세기 말 고구려에 넘겨졌고, 삼국통일로 신라의 영역이 됐다. 백제 영토로 450여년, 고구려 영역으로 150여년, 신라의 땅으로 550여년을 보냈다. 삼국을 통일한 신라는 경덕왕 16년에 충주를 중원으로 삼고 통일신라 영토의 한가운데임을 선포했다. 충주 일대에 고대 격전의 현장이었던 성터 자취가 여럿 남아 있다.

그 가운데 덜 알려진 곳이 살미면 향산리에 있는 대림산성이다. 대림산(489m)은 새재(조령)와 하늘재(계립령)를 거쳐 충주로 이어지는 길목에 솟은 산이다. 옛날 영남대로였고 요즘 3번 국도 중원대로를 끼고 있는 산이다.

대림산성은 일대의 산성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크다. 포곡식 산성의 성벽 길이만 5㎞에 육박한다. 동서남북 4개의 문지 이외에 여러 개의 암문지, 치성, 창고지 등 많은 건물지가 남아 있다. 바로 옆을 흐르는 달천이 자연적인 해자(垓字) 역할을 하고 정문(서문) 양옆으로 해발 100m가 넘는 깎아지른 벼랑이 존재하는 등 요새성을 두루 갖췄다.

하지만 대부분 흙으로 쌓은 토성이어서 현재 산성의 자취가 뚜렷하지 않다. 돌로 쌓은 곳도 있지만 허물어진 흔적만 남아 있다. 흙으로 쌓은 성곽의 자취는 등산로의 오솔길이 돼 버렸다. 성곽길을 걷는 건 편하지 않다. 산성에서 가장 낮은 서문지(해발 100m)와 가장 높은 봉수대지(해발 487m)와의 표고 차이가 커 등산이나 다름없다.

대림산성의 성안 마을인 살미면 향산리 창골 마을이 출발점이다. 주차장에서 100m쯤 오르면 양측으로 오르는 길이 있다. 왼쪽으로 올라 오른쪽으로, 또는 오른쪽으로 올라 왼쪽으로 내려서면 종주다. 쉬운 길은 오른쪽이다.

오른쪽으로 오르면 산성 남문이 있었던 자리 인근에 종주바위가 있다. 1231년에 시작된 1차 여몽전쟁 때 대림산성에서 고려군을 지휘하다가 도망친 충주 부사 우종주의 이름에서 따왔다는 바위다. 당시 방호별감 낭장 김윤후(金允侯)는 ‘만약 힘을 다한다면 귀천을 막론하고 모두 관작을 제수하겠다’며 병사와 백성들을 독려했다.

대림산 정상부에는 봉수대가 있다. 계립령을 넘어온 괴산 연풍의 주정산 봉수와 충주 대소원면의 마산 봉수를 연결했다. 봉수는 흙을 깎아낸 후 둘레에 축대를 쌓았고, 형태는 길쭉한 타원형으로 규모가 큰 편이다.

이곳에 서면 멀리 월악산 영봉과 백두대간의 마루금이 한눈에 보인다. 바로 아래 충주의 야경도 아름답다. 건너편에는 역사와 문화, 추억을 간직한 충주의 남산이 손에 잡힐 듯 가깝다.

남산은 해발 663m로 충주시 직동과 살미면에 걸쳐 있다. 마즈막재를 사이에 두고 북쪽 계명산과 붙어있으며 금봉산이라고도 불린다. 들머리나 날머리 모두 시내에 인접해 있어 교통이 편리하다. 정상에는 남산성이 있다. 충주산성이라고도 하는데 삼한시대 마고선녀가 축성했다는 전설 때문에 마고성이란 이름도 있다.

전설은 이렇다. 옛날 금단산 수정봉에 마고할미(늙은 신선할미)가 살았는데, 하늘의 법도를 어기고 마구 살생을 해 크게 성난 옥황상제가 하천산 노둑봉으로 쫓아냈다. 긴 시간이 흘러 마고할미가 잘못을 뉘우치고 금단산으로 돌아가게 해달라고 빌었다. 옥황상제는 금봉산에 들어가 성채를 쌓고 처소로 삼되 성은 반드시 북두칠성을 따라 한 별씩 7일 동안 쌓게 했다. 마고할미가 명을 받고 산에 이르러 보니 수려한 자연경관과 전망에 감탄해 7일 만에 성을 완성했다.

출발지는 충주호 종댕이길과 가까운 마즈막재. 과거 남산 아래 사형집행장이 있었고, 인근 지역 죄수들이 고향을 마지막으로 바라볼 수 있던 장소였다고 해 ‘마지막재’라고도 불린다.

집수지와 현문식 성문(다락문)을 갖춘 남산성 동문지.

오르는 길은 임도와 등산로가 있다. 등산로와 임도의 마지막 부분을 오르면 남산성의 성곽이 모습을 드러낸다. 북문지 표지판 옆으로 푸른 소나무 한 그루가 멋진 풍경을 펼쳐놓는다. 이 길을 따라 걸으면 첩첩한 산과 푸른 호수, 그리고 도시의 경관까지 모두 다 눈에 담을 수 있다. 서문지를 거쳐 동문지에 이르면 충주산성에서도 가장 빼어난 경관을 볼 수 있다.

세 번째 산성은 중앙탑면 장천리의 장미산성이다. 꽃 이름과 한자가 같다. 장미산(340m)에 쌓은 산성이라 그럴까 싶지만 정작 산의 이름은 ‘긴 장(長)’에 ‘꼬리 미(尾)’자를 쓴다. 산성 이름에는 두 가지 설이 있다. 보련과 장미라는 남매가 성 쌓기 내기를 했는데 남동생인 장미가 이기게 돼 그 이름을 땄다는 게 하나고, 다른 하나는 성을 의미하는 ‘잣’과 산을 뜻하는 ‘뫼’가 합쳐진 ‘잣뫼’로 불리다가 장미가 됐다는 얘기다.

말끔하게 복원된 장미산성 성벽.

장미산성은 충주에서 가장 쉽게 가볼 수 있는 산성이다. 차로 단숨에 성벽까지 올라동쪽으로 길게 뻗은 성벽과 만나게 된다. 말끔하게 새로 복원돼 있다. 가지런하고 매끈한 성벽에 서면 강원도 원주 쪽으로 흘러가는 남한강의 물줄기가 한눈에 들어온다.

여행메모
대림·남 산성 등산… 차로 닿는 장미산성
단월교 단월강수욕장·달래강정원길

보리가 누렇게 익어가는 달래강정원길.

대림산성 주차장은 무료다. 산성 트레킹은 전체적으로 난도가 매우 높다. 전체를 도는데 2~3시간이 소요된다. 서문지(정문)에서 북문지 쪽으로 오르는 것이 좋다. 달천강 뷰를 즐기면서 걸을 수 있다. 출발부터 제법 가파르다. 준비 스트레칭, 특히 발목 운동은 필수다. 로프가 설치된 구간에서는 장갑이 유용하다.

남산성에도 무료무차장이 마련돼 있다. 남산에는 차량이 교행할 정도로 폭 넓은 임도가 있지만 입구에 차단기가 설치돼 있다. 올라갈 때는 등산로로, 내려올 때는 임도를 이용하면 다양한 경관을 즐길 수 있다.

임도는 역사 공부하는 장소로 제격이다. 중원고구려비 지역에서 고구려와 신라의 만남을 시작으로 역사 길이 펼쳐진다. 대몽항전, 충주 출신 임경업 장군의 일대기 등이 길을 장식해 설명글을 읽는 재미가 더해진다. 남산성의 둘레는 1.1㎞지만 곳곳에 경사가 급한 구간이 있다. 장미산성은 성곽 바로 앞까지 차로 갈 수 있다. 입구에 조그마한 무료 임시주차장이 있다.

달천강을 가로지르는 단월교 주변에는 무료 캠핑을 즐길 수 있는 단월강수욕장과 보리밭이 조성된 '달래강정원길'이 있다.

여행의 마무리는 온천으로 하면 좋다. '왕의 온천' 수안보에서 피로를 풀고 이색 보양식인 꿩 요리를 맛볼 수 있다. 꿩생채와 꿩회, 꿩만두, 꿩사과초밥, 꿩꼬치, 꿩불고기 등 다양한 음식이 입을 즐겁게 해 준다.



충주=글·사진 남호철 여행선임기자 hc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