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맹국인 미국이 한국에 부과한 고율관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실무 협상보다는 양국 대통령 간 직접 협상이 핵심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한국도 최소한 영국이 대미 협상에서 얻은 만큼의 성과는 챙겨야 한다는 기준점도 제시됐다.
송원근 현대경제연구원장은 27일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빌딩에서 국민일보 주최로 열린 ‘2025 국민성장포럼’ 주제 강연을 통해 이같이 밝혔다. 송 원장은 “미국 대통령이 매일매일 관세율을 바꾸는, 과거엔 상상하기 힘들었던 일이 벌어지고 있다”며 “한국에 새 정부가 들어서면 당장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 미국과의 관세 협상”이라고 말했다. 그는 “여러 실무 협상도 중요하겠지만 톱(대통령) 간 협상이 가장 중요해지리라고 본다”며 “미국 입장에서 한국과의 협상 내지는 합의가 큰 기준점이 될 것이기 때문에 한국이 미국에 무엇을 줄지 주도면밀하게 고민해봐야 한다”고 짚었다. 이어 “미국이 영국과 협의했던 수준의 결과는 따내야 (미국 관세가) 한국 경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이 감소할 것으로 본다”고 언급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는 세계 각국을 상대로 상호관세를 부과한 이후 처음으로 지난 8일(현지시간) 영국과 무역 협상을 타결했다.
송 원장은 트럼프 2기 들어 심화한 미국의 정책 불확실성에 따른 한국 경제의 피해를 우려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트럼프 관세 부과로 인해 연간 수출은 347억 달러(약 48조원), 국내총생산(GDP)은 1.14% 포인트 감소할 것으로 추산했다. 송 원장은 “미·중 상호관세 60%와 나머지 국가 관세 10% 부과를 가정해 추정한 결과”라며 “향후 관세율이 더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한국의 주요 생산시설이 미국으로 옮겨가면서 발생할 문제도 제기했다. 송 원장은 “한국의 대세계 외국인직접투자(FDI)를 보면 미국향이 가장 많다”며 “향후 자동차, 철강, 반도체 등 주력 산업의 대미 투자가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미국 시장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기업들이 해외 직접투자에 나서고 있는 것”이라며 “한국 주력 산업의 투자와 고용이 미국으로 유출될 수밖에 없는 흐름”이라고 분석했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총 FDI 640억 달러(약 88조원) 가운데 35%가 미국으로 유입됐다. 조세회피처를 제외한 국가 가운데 한국의 총 FDI에서 두 자릿수 비율을 차지한 곳은 미국뿐이었다.
미국의 관세전쟁이 촉발한 보호무역주의와 경제 블록화 현상에 대응하기 위한 한국의 전략도 제시됐다. 송 원장은 “주요국과의 연계를 강화해 글로벌 통상 현안에 대한 대응력을 높이고 국익을 확보해야 한다”며 “아시아 등 주요 신흥 개발도상국과의 통상외교 채널을 강화함으로써 시장을 넓히고 공급망을 안정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소재, 광물, 에너지 등 관련된 자원외교와 각종 수출규제에 관한 환경외교를 강화해 경제 안보력도 키워야 한다”고 덧붙였다.
황민혁 기자 okj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