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에는 대기보다 차갑고 겨울에는 대기보다 따뜻해지는 물의 특성을 활용하는 수열에너지가 일상 영역으로 빠르게 들어오고 있다. 수열에너지는 관련 설비가 눈에 띄지 않아 낯선 방식이지만 이미 대규모 건물을 중심으로 활용되고 있다. 특히 24시간 냉각이 필요한 데이터센터의 경우 수열에너지를 적용하면 에너지 사용량을 60% 이상 절감할 수 있다. 화석에너지보다 높은 에너지 효율을 보이기 때문에 기후위기 대응과 재생에너지 전환의 해법으로도 각광받고 있다.
27일 한국수자원공사에 따르면 국내 수열에너지 사업은 소양강댐 물을 활용하는 강원도 ‘수열에너지 융복합 클러스터’에 더해 서울시의 ‘잠실 스포츠·MICE 복합공간’ ‘성수동 K프로젝트 복합문화시설’, 경기도의 ‘에너지 비용 제로 아파트’ 등 다양한 분야에서 추진되고 있다. 현재 국내 최대 수열에너지 시설은 설비 용량 3000RT(냉동톤)의 서울 롯데월드타워다. 1RT는 8평 공간을 적정한 온도로 냉방할 수 있는 용량이다. 이처럼 수열에너지의 친환경성과 높은 에너지 효율이 주목받으며 이와 비슷하거나 더 큰 규모의 시설이 늘어나는 추세다.
2023년 12월 착공한 강원도 수열에너지 융복합 클러스터는 설비 용량이 1만6500RT로, 소양강댐의 심층수를 활용해 데이터센터 집적 단지와 스마트농업단지 등에 수열에너지를 공급하게 된다.
서울시는 지난해 12월 잠실 복합공간(1만6000RT)과 성수동 복합문화시설(3000RT)의 수열에너지 보급 민간 대상자를 확정했다. 경기도도 지난 3월 수열에너지와 태양광을 이용한 관리비 ‘0원’ 아파트(2500RT)를 2040년까지 80만호 보급하겠다고 밝혔다.
수열에너지는 여름과 겨울, 물의 온도가 대기 온도와 역전되는 현상을 이용한다. 작동 원리는 일반 에어컨과 비슷하지만 실외기나 냉각탑이 필요없다. 대신 중앙 기계실에 설치된 히트펌프가 외부에서 온 물과 열을 주고받으며 냉난방을 한다. 실외기처럼 외부에 노출된 시설이 없으니 소음, 진동, 열섬현상을 줄일 수 있다. 미세먼지 같은 대기오염물질 감축에도 기여한다. 수열에너지를 위해 끌어온 물은 자연으로 다시 돌려보내기 때문에 물의 총량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필요한 물은 수도관로와 하천, 댐 등에서 얻을 수 있어 설치에 필요한 입지 제약도 적은 편이다.
무엇보다 가장 큰 장점은 에너지 효율이다. 화석연료를 연소시키는 경우 화학에너지를 열에너지로 ‘변환’하는 과정에서 에너지 손실이 일어난다. 반면 수열에너지는 물이 이미 갖고 있는 열에너지를 ‘이동’시키는 개념이기 때문에 전력 소모가 적고 에너지 효율은 높다. 전문가들은 수열을 쓰면 화석연료 대비 20~50%의 비용을 아낄 수 있다고 분석한다.
수열에너지는 다양한 시설에 활용할 수 있지만 그중에서도 급증하는 데이터센터는 수열에너지의 필요성을 더욱 부각시키고 있다. 데이터센터는 그 자체로도 에너지 소모가 많은 시설이지만 기기 열을 식히기 위해 24시간 냉방이 필요하다. 한국데이터센터연합회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기준 국내 데이터센터는 153개이고, 2070년까지 30개가 더 늘어날 예정이다. 정부는 전력계통 부담이 큰 수도권 지역에 데이터센터가 몰리는 현상을 막기 위해 입지를 분산하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강원 수열에너지 융복합 클러스터의 경우 전체 면적의 30% 이상을 데이터센터에 공급한다.
데이터센터에 적용하는 수열에너지 냉방 시스템 실증 연구에 참여했던 최종민 한밭대 기계공학과 교수는 “기존 시스템보다 60%에서 80%까지 에너지를 절감할 수 있다”며 “‘에너지 먹는 하마’라는 별명을 가진 데이터센터에 굉장히 큰 이점”이라고 강조했다.
탄소중립을 위해 화석연료 사용을 줄이고 다양한 저탄소 에너지를 활용, 보급하는 일은 차기 정부에 주어진 막중한 과제다. 2030년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에 따라 한국은 2018년 대비 온실가스를 40% 줄여야 한다. 2035년까지 이행할 감축 목표도 9월까지 국제사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건물 분야는 2018년 기준 국내 탄소 총배출량의 24%(직간접 배출 포함)를 차지한다. 최 교수는 탄소중립이라는 현안을 해결하기 위해 수열에너지 필요성이 더 커질 것으로 전망했다. 그는 “재생에너지는 환경 변화에 따라 공급이 끊길 수 있는 ‘간헐성’ 문제가 있는데, 수열은 간헐성 없이 에너지를 공급할 수 있는 친환경 에너지이고 다른 재생에너지를 상호 보완해줄 수 있다”고 말했다.
일본은 1989년 도쿄 하코자키 지구에 하천수를 활용한 열공급센터를 건설하는 등 일찍이 수열에너지를 활용해 왔다. 프랑스도 1991년부터 센강 하천수를 이용해 파리시내 700여개 건물에 냉방을 공급 중이다. 캐나다는 2004년부터 온타리오 호수 심층수를 이용해 7만5000RT 규모의 수열에너지를 생산하고 있다.
최 교수는 “한국은 2015년에 수열에너지가 신재생에너지로 편입됐고 2019년 10월에야 해수에 더해 하천수가 열원으로 추가됐다”며 “앞으로 하수처리장을 지나서 나온 깨끗한 처리수 등 다양한 열원을 수열에너지에 활용할 수 있도록 법적 범위가 확대된다면 보급량도 증가하고 탄소중립 기여도도 높아질 것”이라고 전했다.
세종=박상은 기자 pse0212@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