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 여성의 알바 생활] 따뜻한 언니들

입력 2025-05-31 00:31

나는 인력 알선 업체를 통해 공장 알바를 했다. 담당인 김 상무는 의류 포장업체에 출근하라고 문자를 했다. 걱정이 어린 음성이었다. 새 작업장이었다. 공장이 바뀔 때마다 첫 출근 하는 날, 무시를 당하며 마음이 많이 움츠러들었다. 더구나 그날은 영하 10도 이하로 떨어진 추운 날이라 떨리기까지 했다. 공장은 커다란 창고가 3개 있는 중소 규모였다.

작업장으로 들어가자 날카로운 인상의 반장이 있었다. 인사를 하니 오늘 처음 온 알바라며 걱정스러운 눈치를 보였다. 또 마음을 졸였다. 아무래도 일을 배우며 실수를 하고 속도도 느릴 것이다. 작업은 홈쇼핑 판매로 나간 의류 중 반품으로 들어온 옷들을 선별하고 다시 판매할 수 있는 것들은 접어 포장하는 일이었다.

작업대 앞에 섰는데 반장이 깨끗한 옷들을 접어 포장지에 넣는 시범을 보여줬다. 따라서 해보니 어렵진 않았지만 빠르게 할 수는 없었다. 포장지에 넣을 때 허둥대며 야단맞을 각오를 했다. 그런데 반장이 말했다. “처음에는 다 그래요. 천천히 하다 보면 빨라질 거예요.”

움츠렸던 마음이 확 펴졌다. 그때 옆에서 일하던 언니가 툭 쳤다. 포장지에 넣는 요령을 보여주며 “이렇게 하면 빨리할 수 있어요”라고 알려줬다. 순간 눈물 한 방울이 톡 나왔다. 가르쳐준 대로 하니 정말 속도가 빨라졌다. 2시간을 일하고 쉰 후 다시 정신없이 일하는데 반장이 다가와 알려줬다. “점심 도시락 오니까 정리하세요.” 아! 여기는 신입 알바한테도 점심을 챙겨주는구나! 공장의 세계에도 천사 언니들이 있구나!

오후에는 포장된 옷들을 택배 발송하는 출고 작업을 하게 됐다. 출고장은 횅하게 큰 창고 가운데 있어 너무 추웠다. 박스 접착 기계가 얼어있을 정도였다. 난방기로 기계를 겨우 녹이고 작업을 시작했다. 택배 작업도 처음이라 새로 배워야 했다. 중요한 작업인 납작한 종이 포장지를 박스로 만드는 일, 박스를 접착 기계 안에 넣는 일, 그리고 운송장을 붙이는 일은 반장과 오래 다닌 알바들이 했다. 나는 반장 옆에 서서 박스를 만들 수 있도록 포장지를 미는 일에 배정됐다.

쌓여진 포장지 앞에 선 내게 반장은 서 있는 각도, 박스지를 잡는 손가락, 미는 방향 등을 세밀하게 가르쳤다. 정신을 바싹 차리고 들었다. 기계가 돌아가자 일하는 사람들의 손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속도가 빨랐다. 윙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요란한 가운데 반장은 포장지를 미는 방향이 틀렸다고 내게 소리쳤다.

그 야단이 조금도 섭섭하지 않았다. 반장은 내게 일을 가르치고 있었다. 시키는 대로 팔을 움직이는 데 신경을 집중했다. 어떤 공장에서는 신입에게 일도 제대로 가르치지 않으면서 왕따와 무시를 하지만 어떤 공장에서는 따뜻한 배려를 하며 일을 가르쳤다. 공장의 세계에도 다른 어디와 마찬가지로 좋은 사람이 있고 나쁜 사람이 있다. 퇴근하며 나오는 길에 보니 발가락이 얼어 있었고 왼쪽 팔이 뻐근했다. 집에 와 소매를 걷어 보니 퍼런 멍이 들어 있었다. 하지만 따뜻한 하루였다고 생각하며 나는 미소지었다.

김로운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