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평생 한반도 통일 소망”… 지한파 랭글 전 의원 별세

입력 2025-05-28 01:04
2016년 6월 미국 워싱턴DC 연방의회에서 기자회견을 하는 찰스 랭글 하원의원. 미국 역사상 9번째로 하원의원을 오래(46년간) 연임한 그는 이듬해 은퇴했다. 아래쪽 사진은 그가 6·25전쟁에 참전했을 당시 모습. AP연합뉴스, 뉴욕타임스 캡처

6·25전쟁 참전용사로 미국 내 지한파 정치인의 상징이었던 찰스 랭글 전 연방 하원의원이 26일(현지시간) 별세했다. 향년 94세.

랭글 전 의원의 가족은 그가 뉴욕 맨해튼의 한 병원에서 별세했다고 발표했다. 1930년 맨해튼 할렘의 가난한 흑인 가정에서 태어난 랭글 전 의원은 1950년 6·25전쟁에 참전한 뒤 뉴욕대와 세인트존스대 로스쿨을 졸업했다. 변호사와 연방 검사로 활동하다 1971년 뉴욕에서 연방 하원의원에 당선돼 의회에 입성했다.

그는 2017년 은퇴할 때까지 46년간 민주당 하원의원으로 활동했다. 워터게이트 청문회에서 활약하고 하원 세입세출위원회 최초의 흑인 위원장을 역임하는 등 수십년간 민주당과 흑인 사회에 막강한 영향력을 끼친 정치인이었다. 워싱턴포스트는 “단순한 타협을 넘어 보수적인 공화당 의원들과도 뜻밖의 연합을 이끌어내는 노련한 입법 장인이었다”고 평가했다.

고인은 한국과도 각별한 인연을 맺었다. 그는 6·25전쟁 초기 미 2보병사단 503연대 소속으로 참전해 낙동강 방어선 전투, 군우리 전투 등에서 싸웠다. 중공군 포탄 파편에 부상을 입고도 전우 40여명을 이끌고 포위망을 탈출했다. 그는 6·25전쟁 공훈으로 동성무공훈장과 전상훈장(퍼플하트)을 받았고, 2007년 한국 정부로부터 수교훈장 광화장을 받았다.

의정 활동에서도 한국은 한 축을 차지했다. 그는 한반도 평화·통일 공동 결의안(2013년), 이산가족 상봉 촉구 결의안(2014년), 한국전쟁 종전 결의안(2015년) 등을 발의했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앞장서서 지지했다. 2003년에는 지한파 의원 모임인 코리아코커스 창설을 주도하며 초대 의장을 지냈다.

그는 2021년 백선엽 한미동맹상을 수상하면서 “(전쟁에서) 부상을 입고 한반도를 떠났을 때는 악몽과도 같았고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을 것 같았기에 한국이 전쟁의 폐허를 딛고 미국의 7번째 교역 파트너이자 국제적 거인으로 부상한 것이 너무나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또 “한국은 항상 내 마음속에 한 자리를 차지할 것”이라며 “남북 간 평화를 촉진하면서 우리 두 나라(한·미)가 더 가까워지고, 내 평생에 분단된 한반도가 통일되기를 소망한다”고 했지만 통일을 보지 못한 채 눈을 감았다.

워싱턴=임성수 특파원 joyls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