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작은 것들로 이루어졌네/ 거창한 희생이나 의무가 아니라/ 미소와 위로의 말 한마디가/ 우리 삶을 아름다움으로 채우네/ 간혹 가슴 아픈 일들이 오고 가지만/ 그건 변장한 축복일 뿐/ 시간이 흘러가면/ 큰 놀라움을 보여주리.’
미국의 시인 메리 R 하트만의 시 ‘삶은 작은 것들로 이루어졌네’의 한 구절이다. 이처럼 삶의 거룩함과 행복은 작은 것들로 이루어져 있다. 거창한 희생이나 큰 의무를 다할 때만 삶이 아름다워지는 것은 아니다. 다정한 미소들과 따뜻한 위로의 말 몇 마디가 우리네 삶을 향기롭게 한다. 죄 많은 사람이 살아가는 세상이기에 가슴 아픈 일들이 오고 갈 수밖에 없지만 그 작은 미소와 위로를 잊지 않으면 가슴 아픈 일 또한 변장한 축복이 되어 우리에게 놀라움을 준다.
세상은 오늘도 큰 이야기로 수선스럽다. 누가 더 높고 누구 말이 옳은지 다투는 소리, 더 크고 더 세고 더 높아지라는 소리, ‘너는 틀리고 나는 옳다’는 소리로 가득하다. 세상은 마이크로 크게 외치지만 햇살은 광고하지도 않고 모든 생명을 깨운다. 개미는 뉴스에 나오지 않지만 지구를 움직인다. 바람은 자신을 스스로 자랑하지 않지만 나뭇잎을 춤추게 한다. 이름 없는 작은 것들이 세상을 숨 쉬게 한다. 여름 산과 들이 온통 푸르른 건, 여린 풀잎들이 그 푸른 빛을 다하고 흔들림을 다하기 때문이다. 눈에 띄지 않아 이름조차 불리지 않아도 그 작은 손으로 푸른 빛을 다 쏟아내며, 바람에 흔들리면서도 하늘과 땅을 조용히 떠받치고 있기 때문이다.
세상은 큰 것을 부르짖지만 하나님은 작은 것에 충성하라 하신다. 세상은 위인을 말하고 주님은 이웃을 말한다. 세상은 박수를, 주님은 기도를 말씀하신다. 세상은 무대로 가라 하지만 주님은 기도의 골방으로 가라 하신다. 세상은 숫자를 세지만 주님은 눈물을 세신다. 사람들은 누가 더 크냐를 묻지만 주님은 누가 더 섬기냐를 물으신다. 세상은 마이크를 잡은 자를 주목하지만 하나님은 무릎을 꿇은 자를 바라보신다.
세상은 왕궁을 주목했지만 예수님은 마구간에 오셨다. 세상은 화려한 자리를 탐했지만 예수님은 초라한 구유를 택하셨다. 세상은 높은 자리에 오르려 했지만 예수님은 무릎 꿇어 발을 씻기셨다. 세상은 이름을 남기라고 하지만 예수님은 이름 없는 자와 함께하셨다. 세상은 큰 무리에 주목했지만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 혈루증 앓던 여인처럼 낮고 헐한 한 사람 한 사람을 품으셨다. 세상은 큰돈을 움직이는 사람에게 주목하지만 예수님은 과부의 두 렙돈에 시선을 주셨다. 세상은 명성을 좇았지만 예수님은 십자가로 가셨다. 세상은 큰 업적을 기록하지만 예수님은 한 잔의 물을 기억하셨다.
오늘도 세상은 온통 큰 것에 마음을 두지만 주님은 작은 일에 충성하는 주의 종들에 주목하신다. 한 줌 흙이 모여 태산이 된다. 흙 한 알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자는 동네 뒷동산도 될 수 없다. 들풀 하나에 충성하지 못한 이가 들판을 맡을 그릇이 될 수 없다.
주님은 세상이 큰 이야기를 할 동안 너희는 작은 이야기를 하라고 하신다.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다 착한 종이여 네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였으니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 하고.”(눅 19:17)
한재욱 목사(강남비전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