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습 해체 주창 ‘쉬포르 쉬르파스’ 미술 국내 첫 전시

입력 2025-05-28 01:20
루이스 칸의 ‘벽/벽’(면에 유화물감, 325×325㎝, 1973, 왼쪽)과 마크 드바드의 ‘무제’(자유형 캔버스에 아크릴릭, 149×149㎝, 1968).

전시장 입구 바닥에 크고 네모난 천이 깔려 있다. 통상 캔버스 천은 지지체인 사각 틀에 고정돼 형태를 유지하며 벽에 걸려 전시된다. 그림을 후원했던 부자 컬렉터들의 거실 벽에 장식용으로 걸리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니 바닥에 천 조각 그 자체로 전시한 루이 칸(1943∼2004)의 이 작품은 바로 그런 회화 전통과 권위에 도전이었다.

대구 북구 영송로 대구보건대 인당뮤지엄에서 1970년대 프랑스의 전위미술 운동이었던 ‘쉬포르 쉬르파스’ 소속 작가 13명의 작품을 국내 최초로 전시하고 있다. ‘쉬포르 쉬르파스(Supports·Surfaces)’는 캔버스를 해체시킨 뒤의 지지체·표면을 뜻한다. 이 미술운동은 1968년 5월 파리 대학생들의 시위와 대학 점거로 촉발된 프랑스 5월 혁명이 배경에 있다. 이는 독일, 이탈리아, 미국 등 전 세계적으로 퍼져 68혁명으로 번졌다.

막내 노엘 돌라(80)를 비롯한 13명의 작가들은 당시 기성문화 및 회화 전통에 반기를 들고 전시장을 벗어나 시골 마을의 야외에 작품을 매달거나 기대어 놓는 방식으로 전시했다.

이날 전시장에 나온 작품을 통해 당시의 문제 의식을 읽을 수 있다. 루이 칸을 비롯해 클로드 비알라(89), 앙드레 피에르 아르날(1939∼2024)등은 캔버스를 틀에서 해방시키며 더 이상 관습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고 천명했다. 파트릭 세투르(1935∼2005)는 천을 잘라 커다란 천 목걸이처럼 벽에 걸었고, 다니엘 드죄즈(84)는 캔버스 천을 뜯어내고 남은 사각 프레임을 조각처럼 내놓았다. 마크 드바드(1943∼1983)는 그림을 뜻하는 한자어 ‘화(畵)’에서 영감을 얻은 추상화를 프레임 없이 내놓았다.

최근 한국 전시 개막식에 유일하게 참석한 돌라는 자신들이 미니멀리즘, 마르크스주의, 마오쩌둥 어록, 모더니즘 이론가 클레멘트 그린버그,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 등 다양한 사상과 사조의 영향을 받았다고 말했다. 놀랍게도 비슷한 시기인 70년대 한국에서도 개념 미술의 영향을 받은 실험미술 운동이 펼쳐졌다. 한국과 프랑스의 전위 미술을 비교해 보면 더 재미있다.

대구=글·사진 손영옥 미술전문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