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통신사 대장정, 유물들의 얘기로 생동한다

입력 2025-05-28 01:12
서울역사박물관에서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을 기념해 마련한 조선시대 통신사 특별전 ‘마음의 사귐, 여운이 물결처럼’은 양국 명품 유물이 총출동한 역대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사진은 통신사를 본 일본 민중의 생생한 반응이 담긴 통신사 행렬 그림 ‘연향오년조선통신사등성행렬도권’(1748, 34.8×552.5㎝, 시모노세케시립역사박물관)의 일부. 서울역사박물관 제공

“나라에 바친 붉은 마음, 순탄함과 험난함을 같게 여기고 거센 물결을 뒤덮으며 웃음으로 가볍게 넘기네.”

조선 한양에서 일본 에도까지 왕복 1만리, 6∼11개월에 이르는 대장정이었다. 육로로 가는 중국 사행과 달랐다. 목숨을 내놓아야 하는 바닷길의 여정이었다. 1736년 일본 통신사 사절단을 이끄는 정사 조엄이 임금에게 하직 인사를 올리고 쓴 글은 이렇게 비장했다.

중국처럼 조공(사대)이 아니라 국가 대 국가의 대등한 외교 행위라 국서를 전달하는 임무까지 맡았으니 어깨가 무거웠다. 사행원 규모도 400∼500명으로 중국 사행원 200∼300명보다 배가 됐다. 국서를 실은 가마를 호위하는 군관·의장대, 배를 저어야할 선원까지 대동해야 했기 때문이다.

서울 종로구 새문안로 서울역사박물관이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을 기념해 조선시대 통신사 특별전 ‘마음의 사귐, 여운이 물결처럼’을 하고 있다. 오사카역사박물관, 에도도쿄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 등이 소장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과 보물급 유물 32건을 포함해 양국 국가지정 유물이 쏟아졌다. 관련 유물 128점이 소개되는 역대 최대 규모다. 통신사 전시는 국교 정상화 20주년에 맞춰 1986년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개최된 이래 39년 만이다.

전시는 도입부에서 조선 전기부터 진행된 양국 외교를 조명한다. 1443년 일본 사행을 다녀온 신숙주가 1471년 왕명에 따라 쓴 외교지침서 ‘해동제국기’,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유품 목록 등이 눈길을 끈다. 유품 목록에는 1590년 선조가 조선 사절단을 통해 보내온 국서와 선물 목록이 포함됐지만 도요토미는 2년 후 임진왜란을 일으켰다.

전시는 임진왜란 후 양국 관계가 회복되며 재개된 통신사의 역사에 방점이 찍혔다. 통신사 정사 조엄이 긴장과 설렘 속에 수개월에 걸쳐 지났을 굽이굽이 바닷길이 양국 화가의 두루마리 그림 속에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10차 통신사를 수행한 화원 화가 이성린이 부산을 떠나 쓰시마 오사카 교토를 거쳐 에도로 가는 여정 속에 머문 기항지와 명승지, 인상적인 순간을 30장면에 담은 ‘사로승구도권’( 路勝區圖卷·1748,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국립중앙박물관)이 압권이다. 조선에서 보기 힘든 수차, 배다리 행렬 등이 담겼다.

이와 대구를 이루듯 반대편에는 일본 화가가 조선에 온 통신사 사절단을 그린 두루마리 ‘연향오년조선통신사등성행렬도’(1748, 유네스코세계기록유산, 시모노세키시립역사박물관)이 전시됐다.

“이 정도 대접이면 환대라 할 만해” “인원이 300명쯤 되다보니 준비한 음식이 금방 바닥이 났다. 오이는 특히 인기였다. (중략) 며칠 지나자 오이 값이 오르기 시작했다.”

물가를 들썩이게 한 조선 통신사 사절단, 이들을 바라보는 일본인의 호기심 어린 마음이 만화의 말풍선처럼 글로 적혀 있다.

우키요에 화가 하네가와 도에이가 그린 ‘조선통신사래조도’(18세기). 에도에서 국서 전달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는 조선 통신사 행렬을 그렸다. 일본 개인 소장

마침내 도착한 에도에서 통신사가 환대받는 모습을 일본 화가가 우키요에 판화에 담은 그림, 배에 탄 조선 통신사 행렬과 이를 구경하는 일본인들을 그린 그림, 그리고 사절단의 핵심 목적인 조선 국왕의 국서를 전달하는 그림, 조선 사절단이 마상무예를 선보이는 그림, 쇼군의 화답서를 담은 국서함 그림도 볼 수 있다. 통신사 행렬은 외교의 현장이었지만 당대 일본인에게는 가장 스펙터클한 구경거리였음을 알 수 있다.

조선 통신사 행렬이 일본의 대중문화에 끼친 영향을 보여주는 대목이 전시의 대미를 장식한다. 조선 통신사 행렬에 등장하는 인물을 재현한 인형, 통신사 행렬 관람 가이드북 등이 나왔다.

임진왜란 후 1607년 재개된 통신사는 1811년까지 12차례 진행되고 막을 내렸다. 한국과 일본은 가깝고도 먼 사이다. 이 전시는 조선이 일본에 보낸 사절단을 통신(通信), 즉 믿음으로 통한다는 의미를 담아 통신사로 불렀던 외교사를 시각적으로 풀어낸다. 그러면서 외교야말로 양국 문화를 살찌우는 길이라는 메시지를 던진다. 6월 29일까지.

손영옥 미술전문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