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가 선거에 출마하면 어떨까. 엉뚱한 소리로 들리겠지만 해외 선례는 없지 않다. 과거 미국 대선엔 사료 모델로 주목받던 고양이가 출사표를 던져 스포트라이트를 받았고, 알래스카의 한 작은 도시에선 투표로 고양이가 명예시장이 되기도 했다. 인간 세계의 선거전에 뛰어든 동물로는 고양이만 있는 게 아니어서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시장 선거엔 침팬지가 입후보한 적이 있고 아일랜드 대선엔 한때 칠면조 캐릭터가 출마해 관심을 끌었다.
한국에서도 이런 일이 가능할까. 물론 고양이가 6·3 조기 대선에 출마하기란 불가능하다. 공직선거법에 따르면 대선에 입후보하려면 ‘선거일 기준 5년 이상 국내에 거주하고 있는 40세 이상의 국민’이어야 한다. 법적으로 한국 국적을 취득한, 무려 마흔 살을 넘긴 고양이는 존재할 수 없다. 하지만 모든 조건을 갖춘 고양이가 출사표를 던졌다고 가정해 보자. 결과는 어떨까. 제법 높은 득표율을 기록할 수도 있을 것이다. 만약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언론들은 6·3 대선의 ‘묘풍(猫風)’은 유권자들이 정치권에 전한 준엄한 시그널이라는 보도를 쏟아낼 것이다. 한국 유권자들이 고양이를 통해 자국 정치의 조악한 수준을 세계만방에 고발했다는 외신들의 평가도 예상된다.
그렇다면 ‘기호 ○번 야옹이’의 지지자는 어떤 사람들로 채워질까. 많은 이가 진영을 나눠 서로를 불구대천의 원수처럼 여기며 으르렁대는 상황이 몇 년째 이어지고 있지만, 이 싸움터의 둘레엔 이쪽도 저쪽도 아닌 사람이 적지 않다. 정치학자의 용어를 빌리자면 어떤 정당과도 일체감을 못 느끼는 ‘순수 무당파’, 바로 그들이 고양이 후보의 뒷배가 돼줄 것이다.
몇몇 논문에 따르면 한국 무당파의 가장 큰 특징으로 자주 언급되는 것은 그 규모다. 미국을 비롯한 서구 민주주의 국가에서 무당파 비율은 10% 수준을 맴돌지만 한국은 30%를 웃돌거나 때론 절반에 육박하곤 한다. 정치판의 반복된 이합집산과 꾸준한 이전투구가 이런 현상을 만들었을 게 불문가지인데, 주목할 만한 부분은 높은 비율에 비해 공론장에서 느껴지는 무당파의 존재감이 매우 희미하다는 것이다. 그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서 들고 싶은 사례는 과거 콜롬비아 수도 보고타에서 있었던 일이다. 한때 보고타는 교통사고로 악명 높은 도시였다. 온갖 정책을 내놓아도 교통사고 사망률은 떨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교통경찰은 뒷돈 챙기는 일에만 급급했다. 특히 심각한 것은 무단횡단이었다. 1996~2000년 교통사고 사망자 절반 이상이 보행자였다.
백년하청으로 여겨지던 보고타의 교통 문제는 훗날 희한한 정책 덕분에 풀리게 된다. 해결사는 ‘교통 광대’였다. 보고타의 시장은 경찰을 줄이고 그 자리에 광대들을 배치했다. 펑퍼짐한 바지에 나비넥타이를 맨 광대 20명은 교통 법규를 잘 지키는 보행자를 칭찬했고 그렇지 않은 이는 마구 놀려댔다. 건널목 안전선을 지키지 않는 운전자, 헬멧을 안 쓴 오토바이 라이더 등이 타깃이 됐다. 공개적으로 망신을 당하니 시민들은 조심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광대는 400여명으로 늘었고 교통사고는 급감했다.
보고타에서 있었던 일은 인간이 얼마나 모욕과 비방과 조롱에 취약한 존재인지 보여준다. 무당파들이 자신의 견해를 드러내는 걸 부담스러워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이쪽도, 저쪽도 싫다는 식의 말을 내뱉으면 대번에 비겁한 양비론자라는 식의 비난을 살 가능성이 크니까. 고양이가 선거에 출마하지 않는 이상 이들의 표심이 선거에서 표나게 드러나긴 힘들 수밖에 없다. 더불어민주당이 자신하던 ‘압도적 승리’가 현재로선 쉽지 않아 보이는 것도 고양이 지지자들의 외면 때문일 것이다.
박지훈 디지털뉴스부장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