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어린 자녀 둘이 싸운다. 부모는 “싸우지 마라”고 훈계하고, 달래도 보지만 아이들은 말을 듣지 않는다. 부모는 속이 상하고, “어떻게 저럴 수 있지?” 싶은 생각이 든다. 결국 화를 내면 아이들은 잠시 멈추지만 이내 다시 다툼이 시작된다. 부모는 “다른 집 아이들은 이렇지 않다던데…”라며 한숨을 쉰다.
#2. 교실에서 한 학생이 고개를 숙이고 있다. 교사가 “수업 시간에는 고개를 들고 앞을 보자”고 말해도 듣지 않는다. 교사가 옆에 가서 조용히 “고개를 들면 어떻겠니?”라고 묻자 학생은 짜증 섞인 말을 한다. “내 고개도 내 마음대로 못 합니까? 재미도 없는 수업에 왜 자꾸 고개 들라고 하십니까?” 교사는 당황하고 속이 상한다.
부모나 교사는 이런 상황에서 당혹스럽다. 자녀와 학생이 더 나은 삶을 살도록 돕고자 애쓰지만 그 노력이 전혀 전달되지 않는 듯해 마음이 상한다. “나는 최선을 다했는데 왜 이럴까”라는 생각이 든다. 많은 사람이 이런 아이들을 문제아, 반항 학생으로 규정한다. 그리고 이들을 말 잘 듣는 아이로 만드는 방법을 찾는다. 그 가운데 가장 흔히 추천되는 것이 공감이다. 공감은 상대편의 감정을 알아주는 것이라고 배운다. 이것을 바탕으로 자녀나 학생에게 “너희들이 서로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있구나” “지금은 피곤해서 고개를 들기 어렵겠구나”라고 말을 건넨다. 그리고 공감을 해줬다고 여긴다.
하지만 이것이 정말 공감일까. 이런 반응은 여전히 부모와 교사의 기대와 기준 안에서 청소년을 바라보는 것이다. 공감을 통해 부모는 아이가 말을 잘 듣기를 바라고, 교사는 학생이 지시를 따르기를 기대한다. 공감을 하는 이유는 그래야 자신의 말을 들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부모의 시각에서 보면 아이들의 싸움은 문제 행동이다. 그러나 자녀는 자기주장을 배우는 과정일 수 있다. 혹시 부모가 싸울 때마다 서로 이기려 했던 모습을 아이들이 본 건 아닐까. 그런 경험이 반복되면 아이는 “싸움에서 지면 안 된다”는 무언의 메시지를 받았을 수 있다.
교사의 시각에서는 학생이 고개를 들고 수업에 집중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학생 입장도 그럴까. 수업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자존감 낮은 학생에게 고개를 드는 일은 질문의 대상이 되는 불안으로 다가올 수 있다. 실수하거나 모른다는 것이 드러날까봐 고개를 숙이는 것이 자기를 보호하는 노력일 수 있다. 이런 학생에게 “고개 들어”라는 말은 격려라기보다 간섭과 위협으로 느껴질 수 있다.
공감은 상대편의 감정을 알아주는 일이 아니다. 진짜 공감은 상대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려는 시도이며, 그의 언어와 맥락 안에서 그의 경험을 이해하려는 태도다. 그래서 공감을 하는 순간 우리의 시선은 달라진다. 아이들의 싸움이 단순한 문제 행동이 아니라 사회적 관계를 배우는 과정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그 순간 부모는 “그만 싸워”라고 말하기 어렵다. 그들이 표현하고 싶은 것에 대해 함께 귀 기울이게 된다. 학생이 고개를 숙인 것은 ‘게으름’이 아니라 자존심을 지키는 절박한 몸짓이라는 것을 느끼는 교사는 어려움 속에서 고군분투하는 학생의 모습을 보게 된다. 그런 교사 앞에서 학생은 통제 대신 신뢰를, 부끄러움 대신 용기를 배운다.
사회 곳곳에서 공감의 중요성을 강조하지만 이는 선한 충고, 따뜻한 위로, 격려의 포장으로 소비되곤 한다. 그러나 공감이란 타인의 내적 세계를 이해하려는 지속적인 노력이며 그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려는 태도다. 우리가 공감을 제대로 배우고 실천할 때 자신과 타인 그리고 사회도 함께 성장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길은 언제나 상대편을 이해하려는 자세에서 시작된다.
차명호 평택대 상담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