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셉은 형제 유다의 손에 의해 애굽으로 향하던 이스마엘 사람에게 은 20에 팔려가고 다시 보디발(파라오의 왕국관리 호위대장)에게 넘어가 그 집에서 노예의 신분이 됩니다.(창 37:36, 39:1) 그런데 성경은 그렇게 철저하게 무너지고 있었던 요셉을 가리켜 “형통한 자가 됐다”(창 39:2)고 말합니다. 이 점은 오늘날 성경을 대하는 우리로서는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고 동의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요셉이 그처럼 형통한 자가 되고 있었던 이유를 창세기 39장 2절의 문장 앞부분에 이렇게 설명합니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계셔서 (그래서) 그는 늘 잘되는 사람이 됐다”(새한글성경)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해하는 형통의 개념은 무엇입니까. 남들은 어려워도 나는 지름길을 걷게 되고 다른 사람은 모두 실패하는 순간에도 나는 승승장구하는 삶을 형통한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차원에서 생각해보자면 요셉은 결코 형통한 자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씀하는 형통한 자의 의미는 타인보다 상대적으로 더 나은 상황이나 더 안락한 형편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 불변하시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하시는 삶, 그 자체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요셉의 주인 보디발은 이런 요셉이 여호와께서 함께하시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요셉은 주인인 이집트 사람의 집에 머물렀다. 주인이 보니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계셨다. 그래서 그가 하는 일은 무엇이든 그의 손에서 잘되게 해 주셨다.”(창 39:2~3·새한글성경)
그래서 보디발은 요셉에게 자신의 집을 돌보게 했고 자신에게 있는 것을 다 요셉의 손에 맡겨 관리하게 합니다. 요셉과 함께하시는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계속 말씀합니다.
“요셉은 주인의 눈에 들었고 주인을 잘 섬겼다. 주인은 그에게 자신의 집을 돌보게 했고, 자신에게 있는 것을 다 그의 손에 맡겼다. 요셉에게 자신의 집과 자신에게 있는 것을 다 돌보게 한 뒤로 여호와께서 그 이집트 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셨다. 요셉 때문이었다. 여호와께서 내리신 복이, 그에게 있는 모든 것에 미쳤다. 집 안에서든 들에서든 그랬다.”(창 39:4~5·새한글성경)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보디발에게 복을 내리기 시작한 시점입니다. 보디발이 단지 하나님이 요셉과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본 순간이 아닙니다. 요셉이 하나님의 동행으로 형통한 자가 됐다는 사실을 깨닫고 자신의 삶을 그 요셉에게 맡긴 순간입니다. 즉 깨달은 바를 실제 삶으로 실천하기 시작했을 때 하나님은 복을 내리셨습니다.
주님이 기대하시는 믿음도 이와 같습니다. 복음을 아는 데 그치지 않고 그 복음이 삶으로 옮겨질 때를 원하십니다. 믿음과 삶은 결국 하나입니다. 우리의 머릿속에 담긴 복음이 손끝으로 옮겨져 삶으로 믿음을 살아내시는 주의 자녀들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전영준 목사(인천 더작은교회)
◇인천에 있는 더작은교회는 ‘소외된 이웃과 함께’ ‘작지만 건강한 교회’ ‘선교적 삶의 실천’을 목표로 지역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이 교회에 11년째 시무 중인 전영준 목사는 서울신학대 신학대학원(MDiv)에서 공부했으며 영국 버밍엄 크리스천칼리지에서 선교학(MA) 과정을 수료하고 영국 더럼한인교회를 섬겼습니다. 귀국 후 현재까지 더작은교회를 섬기며 복음 중심의 목회를 이어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