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대 대통령 선거 주요 후보들의 에너지 정책 공약은 원자력 발전과 재생에너지의 활용 비중에서 차이가 난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재생에너지 전환 가속화와 함께 기존보다 다소 온건해진 ‘원전 유지’ 방침을 내걸었다. 반면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는 원전 비중을 대폭 끌어올려 전력 수요를 저렴하게 충당하겠다는 구상을 내놓았다. 명확한 공약을 발표하지 않은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도 원전의 효율성을 강조하고 탈원전을 비판하는 등 원전 친화적인 입장을 드러냈다.
이재명 후보는 에너지 분야 주요 공약으로 서해안 에너지고속도로 건설을 내걸었다. 2030년까지 서해안을 가로지르는 초고압직류송전망(HVDC) 송전선로를 완공해 남·서해안 해상풍력 등 호남권의 재생에너지를 주요 산업단지와 수도권으로 공급한다는 구상이다. 재생에너지 확대를 통한 석탄화력 완전 종식 시점도 문재인정부가 설정한 2050년에서 2040년으로 10년 앞당겼다.
공약 이상으로 주목을 모은 것은 원전에 대한 태도 변화였다. 그동안 민주당 대선 후보들이 내걸었던 탈원전·감원전 구호는 이번 대선에서 자취를 감췄다. 대신 기존 원전 활용과 수명 연장 카드가 등장했다. 이재명 후보는 지난 23일 대선 TV토론에서 “이미 지어진 원전들은 계속 잘 쓰고, 가동연한이 지났더라도 안전성이 담보되면 더 쓰는 것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인공지능(AI)을 비롯한 첨단 산업 분야의 막대한 전력 수요를 충당하려면 탈원전만 고집해서는 곤란하다는 실용주의적 인식 때문으로 풀이된다. 다만 원전은 근본적 해답이 아니고 결국에는 재생에너지 비중을 늘려야 한다는 기존 입장은 고수했다. 이재명 후보는 23일 TV토론에서도 “(원전이) 당장은 싸지만 폐기물 처리와 위험 비용을 계산하면 엄청나게 비싼 에너지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반대로 김 후보는 전면적인 ‘원전 비중 확대’를 핵심 에너지 공약으로 내세웠다. 신규 대형 원전 6기를 새로 건설하고, 여기에 소형모듈원자로(SMR) 조기 상용화와 기존 원전 지속 가동을 더해 전체 전력 발전에서 원전 비중을 현재의 32.5%에서 60%까지 끌어올린다는 발상이다. 전력계통 문제 해소에 대해서는 이재명 후보와 마찬가지로 에너지 고속도로를 비롯한 전력망 인프라 확충을 답으로 내세웠다.
김 후보는 특히 원전의 경제성에 주목했다. 23일 토론에서 김 후보는 “원전은 온실가스를 가장 적게 배출하는데 발전 단가도 50~60원이고, 재생에너지는 발전 단가가 300원에 이른다”면서 재생에너지와의 비용 격차를 강조했다. 이처럼 저렴한 원전을 늘려 산업용 전기요금도 인하하겠다는 것이 김 후보의 구상이다. 반면 원전 의존도를 지나치게 높일 경우 원전을 배제한 친환경 에너지 캠페인 RE100을 충족할 수 없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RE100은) 구호일 뿐 맞추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면서 별다른 해법을 내놓지 않았다.
이준석 후보의 경우 10대 공약에 에너지 관련 공약을 포함하지 않았다. 다만 대선 토론 과정에서 문재인정부의 탈원전 정책과 원전 세일즈 소홀 의혹을 추궁하는 등 비교적 원전 친화적 입장을 드러냈다.
주요 후보들의 에너지 정책을 놓고 구체적인 검증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거대 양당 후보의 공약인 에너지 고속도로 건설은 수십조원 규모의 재원을 필요로 하는 사업이다. 하지만 막상 사업을 담당해야 하는 한국전력공사는 2021년 이후 누적 적자만 30조9000억원에 달해 재정 여력이 충분치 않다.
강천구 인하대 제조혁신전문대학원 초빙교수는 “탄소중립 실현과 경제성 확보를 모두 이룬 에너지 믹스를 실현하기 위해 정책을 구체적으로 검증하고 논의해야 하는데, 지금은 명확하지 않은 워딩 속에서 정치적 공방만 오가고 있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세종=이의재 기자 sentin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