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권 독립의 침해는 윤석열 전 대통령이 파면된 사유 중 하나였다.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결정문에 명시돼 있다. 퇴임한 대법관을 계엄군의 체포 명단에 포함시킨 것이 현직 법관의 독립된 재판을 가로막는 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사법 독립의 기준을 예민하게 제시한 그 결정이 나온 지 두 달도 안 돼, 그로 인해 열리는 조기 대선에서 ‘재판 독립’이니 ‘사법 장악’이니 하는 말이 다시 선거 쟁점이자 사회 이슈로 부상했다.
이재명 후보의 선거법 사건을 대법원이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하며 벌어진 법원 안팎의 논란은 26일 나란히 한 고비를 넘겼다. 조희대 특검법 등 사법부 공격 법안을 집중 발의해온 더불어민주당은 대법관 100명 증원과 비법조인 대법관 임명 법안을 전격 철회했다. 사법 장악 논란에 선거 판세가 요동친다고 판단해 물러선 것이다. 일부 판사들이 문제를 제기해 소집된 법관대표회의에선 대법원의 이 후보 판결에 대한 입장 표명이 나오지 않았다. 결론을 내리지 않은 채 선거 후 회의를 속행키로 했다.
헌법재판소가 윤 전 대통령을 탄핵하며 전직 대법관 문제를 지적한 것은 사법권 독립이 민주공화국 성립의 필수조건이어서였다. 그렇게 훼손된 공화국을 복원하는 선거에서 민주당은 현직 대법원장 특검법 등 노골적인 사법권 침해 법안을 쏟아냈다. 법원 판결에 헌법소원을 허용하는 법안, 판결을 이유로 법관을 처벌하는 법 왜곡죄 신설 법안 등 사법체계를 뒤흔드는 입법권 행사에 사법권마저 장악하려 한다는 여론의 역풍이 인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이제라도 일부 법안을 철회한 건 다행스럽지만, 권력분립 원칙을 지키고 사법권 독립을 보장하리란 믿음을 주기엔 부족하다. 이미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회부된 관련 법안들을 철회하고, 향후에도 이런 시도가 없으리란 확약을 후보와 당이 국민 앞에 내놓아야 할 것이다.
법관대표회의 소집을 주장한 일부 판사들은 대법원의 이 후보 판결이 이례적으로 신속해 정치적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 재판은 이미 2년 전에 끝났어야 한다고 법에 규정돼 있다. 신속함을 문제 삼기 전에 법을 어겨가며 이례적으로 지연된 재판을 지적했어야 옳다. 그로 인해 선거가 임박하도록 유무죄가 가려지지 않아 유권자가 판단의 근거를 얻지 못한 상황이 오히려 법원의 직무유기에 가깝고, 대법원이 판결을 미뤄 그대로 선거가 치러졌다면 그것이 더 정치적인 결정일 수 있었다.
이런 사안을 놓고 법원 내부에서 최고 재판부 판결에 왈가왈부하는 것은 스스로 독립성을 훼손하는 일이다. 정치의 사법화에 얽혀 사법의 정치화가 공공연해진다면 민주공화국은 존립할 수 없다. 선거 후 속행될 회의에서 정치로부터 재판의 독립과 공정성을 강화하는 논의가 진지하게 이뤄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