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성수 특파원의 여기는 워싱턴] 누군가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 ‘바이든 건강 은폐설’ 논란 증폭

입력 2025-05-28 00:32
조 바이든 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9일(현지시간) 엑스에 올린 부인 질 바이든 여사, 고양이와 함께 찍은 사진. 앞서 전립선암 투병 사실을 알린 바이든 전 대통령은 “암은 우리 모두에게 영향을 미친다”면서 “사랑과 지지로 우리를 응원해줘서 감사하다”고 밝혔다. 로이터연합뉴스

의혹 다룬 책 ‘원죄’ 발간에 미국 발칵
공화당 “그는 꼭두각시” 청문회 요구
민주당선 권력 투쟁 양상으로 비화
“권력 감시 적절했나” 언론계도 설전

“무책임하고 자기 홍보만 하는 기자들이 금전적 이득을 위해 쓴, 독창성도 없고 영감도 없는 거짓말 덩어리에 불과하다.” 조 바이든 전 미국 대통령의 손녀 나오미 바이든은 최근 소셜미디어에서 바이든 전 대통령의 건강 은폐 의혹을 제기한 책 ‘원죄(Original Sin)’와 그 저자들을 이렇게 혹평했다. 그는 “익명 제보에 의존해 현재의 국가적 악몽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는 이기적인 허위 주장”이라고 비난했다.

CNN 앵커 제이크 태퍼와 악시오스 기자 알렉슨 톰슨이 공동 저술한 ‘원죄’가 지난 20일 발간된 이후 바이든의 건강 상태에 대한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바이든의 전립선암 투병 고백 이후에도 대통령 재임 시절 건강 이상 은폐에 대한 정치적 공방과 언론의 역할 등을 둘러싼 토론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언론들은 바이든 건강 은폐 의혹을 두고 ‘단독 경쟁’ 중이다. 최근 악시오스는 2023년 바이든이 기밀문서 유출 혐의로 로버트 허 특별검사와 면담 조사를 하는 음성 파일을 입수해 보도했다. 이 파일에서 바이든은 아들 보 바이든이 언제 사망했는지, 자신이 부통령에서 언제 퇴임했는지를 특정하지 못해 한참을 머뭇거린다. 허 특검과 변호사 등이 설명을 해준 뒤에야 바이든은 겨우 말을 이어 나간다. 바이든이 재임 때 인지 장애를 겪고 있었다는 ‘원죄’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보도로, 이 기사의 작성자 또한 ‘원죄’의 공동 저자인 톰슨이다. 바이든 측은 악시오스 보도에 대해 “이미 1년 전에 바이든 행정부가 관련 녹취록을 공개했다”며 “해당 음성은 기존 내용을 재확인하는 수준에 불과하다”고 반박했다.

폴리티코도 지난해 대선 때 공개되지 않았던 바이든의 선거광고 영상을 단독 입수해 보도했다. 지난해 4월 델라웨어주 타운홀 미팅에서 바이든이 유권자들과 즉석 질의응답하는 영상이다. 한 참가자가 “대통령님, 참전용사들을 위해 한 일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라고 묻자 바이든은 “이제 우리는 PACT(재향군인지원법)를 갖고 있다. 수만명의 참전용사와 그 가족들이 혜택을 받고 있다”고 답한다. ‘원죄’의 저자들은 바이든의 답변이 너무 부실해 상당한 편집을 한 뒤에도 영상을 사용할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바이든 측은 지난해 6월 첫 TV토론 참사 이후 바이든이 대선 후보에서 사퇴하면서 방송하지 못했을 뿐이라고 반박했다.

정치 공방은 더 뜨거워져 민주당 내에서도 바이든 건강 은폐설은 권력 투쟁의 땔감이 되고 있다. 내년 캘리포니아 주지사 선거에 도전장을 낸 안토니오 비야라이고사 전 로스앤젤레스(LA) 시장은 최근 카멀라 해리스 전 부통령을 겨냥해 바이든 건강 은폐에 가담했다고 비난했다. 비야라이고사는 “유권자들은 진실을 알 자격이 있다. 해리스와 하비에르 베세라 전 보건복지장관은 무엇을 언제 알았고, 왜 침묵했는지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해리스와 베세라 전 장관이 캘리포니아 주지사 선거 출마설이 나오자 바이든 건강 은폐설을 동원해 견제에 나선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공화당은 한술 더 떠 바이든 ‘꼭두각시’ 논란에 불을 지피고 있다. 바이든의 ‘오토펜(자동서명)’ 사용을 꼬집으며 그가 퇴임 직전 앤서니 파우치 전 국립 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 소장, 아들 헌터 바이든 등을 사면할 때 서명을 직접 한 것인지를 문제 삼고 있는 것이다. 공화당 론 존슨 상원의원은 “누가 정부를 운영했느냐”고 물으며 바이든 건강 관련 청문회를 열자고 요구했다.

‘원죄’를 두고 언론계에서도 논란이 일고 있다. 저자 톰슨은 백악관 출입기자단 만찬에서 해당 보도로 상을 받았다. 톰슨은 수상 연설에서 “바이든의 쇠퇴와 이를 은폐하려는 측근들의 시도는 정당을 불문하고 모든 백악관이 기만행위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며 “언론이 더 잘 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NBC방송 출신 유명 언론인 척 토드는 “언론이 이 이야기를 놓쳤다는 식의 ‘도덕적 제스처’는 거짓”이라며 “그 영상(바이든이 노쇠해 보이는 영상)들이 왜 퍼졌는지 아느냐? 언론이 엄청나게 보여줬기 때문”이라고 반박했다. MSNBC의 유명 진행자 미카 브레진스키도 “이 책을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면서도 “왜 ‘은폐(Cover up)’ 같은 단어를 사용했는지 알고 싶다. 그런 표현은 마치 범죄나 부정한 일이 있었던 것처럼 들린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저자 태퍼는 더 큰 비난을 받고 있다. 그는 바이든 재임 시절에는 건강 이상설을 제기하는 언론들을 강하게 비판하며 바이든을 옹호해 왔기 때문이다. CNN이 ‘원죄’를 지나치게 홍보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태퍼는 “내가 이 이야기들을 2022년이나 2023년, 또는 2024년에 알았더라면 즉시 보도했을 것”이라며 “하지만 기자란 결국 자신의 취재원이 말해주는 만큼만 알 수 있는 존재”라고 항변했다. 하지만 폭스뉴스는 “어떤 내부 고발자가 폭로하기 전까지는 뉴스로 간주되지 않는다는 사고방식은 결국 모든 권력을 취재원에게 집중시킨다”며 “태퍼와 톰슨이 인용한 모든 취재원은 수년간 미국 국민 전체를 속여 왔다”고 비판했다. 바이든의 암 진단 고백 이후에도 태퍼와 톰슨은 책을 홍보하는 ‘북 토크 투어’를 이어가고 있다.


워싱턴=임성수 특파원 joyls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