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 정책의 정치화 근절이 우선

입력 2025-05-27 00:38

8년 전 정권교체기에 경제부처 고위공무원을 대상으로 ‘차기 정부에서 절대 하지 말았으면…’이란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 당시 공무원들이 가장 원했던 것은 조직 안정과 정책의 연속성이었다. 10년 가까이 지난 지금 같은 질문을 던진다 해도 대답은 비슷할 듯싶다. 그 이후에도 정권이 바뀔 때마다 부처 조직 개편과 이전 정부 정책 지우기가 없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문재인정부는 박근혜정부가 강조한 ‘창조’를 말살했고, 윤석열정부에서는 문재인정부에서 원전과 부동산 정책에 관여한 공무원들을 ‘세게’ 손봤다. 이런 현상이 반복되면서 ‘영혼 없는 공무원’은 늘어났고, 백년대계여야 할 정책은 현 정부의 남은 임기와 운명을 함께했다.

대선을 코앞에 두고 또다시 정부 조직 개편 논의가 한창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왕 노릇 하는’ 기획재정부를 손볼 모양새다. 민주당 내에서는 기재부에서 예산 기능을 떼어 내 노무현정부 때처럼 기획예산처 같은 부처를 신설하는 방안이 거의 확정적이라는 말이 나온다. 예산 권한을 내어주는 기재부는 대신에 금융위원회의 국내 금융정책 기능을 받는 방안이 함께 논의 중이다. 산업통상자원부에서 에너지 분야를 떼어 내 기후에너지부를 신설한다는 구상도 내비친다.

민주당에서 ‘기재부 쪼개기’를 상수(常數)로 두는 것은 기재부가 자초한 측면도 있다. 기재부가 그동안 기획·예산·재정 등 막강한 권한에 걸맞은 ‘컨트롤타워’ 역할을 했는지 의문이다. 경제성장률이 잠재성장률을 밑도는 장기 침체가 이어지고 있지만 이를 타개할 비전과 로드맵을 제시하지도 못했다. 기재부 쪼개기와 별개로 인공지능(AI), 에너지 등 미래 현안에 대비한 정부 조직을 재정비할 수요도 존재한다. 이참에 금융회사로부터 고액 연봉을 보장받으면서 이들을 감독하는 이상한 ‘반민반관’ 조직인 금융감독원 역시 개혁할 필요도 있다.

그러나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처럼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하는 조직 개편은 득보다 실이 많다. 지난 정부 내내 자신들의 정당 정책에 사사건건 발목 잡았다고 보복하듯 기재부를 없애버리는 것이 한국 경제에 도움이 될지 따져봐야 한다는 말이다. 특히 새 정부는 인수위원회 구성이 없이 바로 출범한다. 대선 직후에는 예산과 세법개정안을 준비하기에도 빠듯한 시간이다.

새 정부가 할 일은 도돌이표처럼 반복되는 정부 조직 개편보다는 일하는 조직 문화를 만드는 게 우선이다. 행정고시를 붙고 기재부에 들어온 1, 2년차 사무관들이 줄줄이 사표를 내고 로스쿨로 가는 현실에서 새로운 부처가 생긴다고 공직사회가 활기를 찾을 수는 없다. 교육부를 부총리급으로 격상해서 교육 여건이 좋아졌는지, 여성가족부가 만들어져서 여성 인권이 성장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조직은 일하게 하는 수단이지 목적이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현시점에서 시급한 것은 정책의 정치화 근절이다. 필요한 정책이라는 생각이 들어도 ‘정권이 바뀌면 다치지 않을까’라는 자기검열에 주저하는 게 작금의 공직사회 문화다. 전문성은 사라지고 눈치 보기만 남아 있는 조직에 발전은 있을 수 없다. 1970, 80년대처럼 밤새 야근하는 애국심에만 기댈 수도 없다. 성과에 그만큼의 보상이 따르는 시스템이 만들어져야 젊은 공무원들이 의욕을 가지고 일할 수 있다. 유력 대선 후보의 실세가 언론 인터뷰에서 “새 정부가 들어서면 공무원들은 다 죽었다고 봐야 한다”는 말로는 공무원을 움직일 수 없다. 보수와 진보 정부가 계속 바뀌어도 ‘줄 서는’ 공무원이 아닌 능력 있는 공무원이 중용되는 문화가 정착된다면 정부 조직 개편은 필요 없을 듯싶다.

이성규 산업1부장 zhibag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