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령사회 대비 불충분”… 교회가 돌봄 주체 역할을

입력 2025-05-27 03:02
게티이미지뱅크

“예전 같았으면 상상도 할 수 없었습니다.”

이건혁(가명·28)씨는 26일 요양원에서 본 그림 한 장을 두고 이같이 말했다. 삐뚤빼뚤 색연필 선과 유치원생 같은 글씨. 그림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치매를 앓고 있는 그의 할아버지였다. 가족 안에서도 ‘가부장적이고 무뚝뚝한 사람’이던 할아버지였다.

그는 “그런 할아버지의 변화가 믿기지 않았지만 동시에 ‘가족만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돌봄의 현실’을 체감한 순간”이라며 “마음 한편으론 할아버지가 요양원에 계셔서 그나마 다행이다. 가족이 직접 돌보는 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고 말했다.

이씨의 고민은 한국사회가 마주한 ‘돌봄 위기’를 반영한다. 고령화 속도가 가파른 현실 속에서 돌봄은 개인이나 가족의 책임만으로 감당할 수 없는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한국교회가 이 공백을 메우는 ‘공동체적 돌봄’의 주체로 나서야 한다는 제안이 나온다.

실제 한국리서치가 최근 발표한 ‘초고령사회 진입과 돌봄 위기’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10명 중 8명(78%)은 초고령사회에 대한 대비가 충분하지 않다고 답했다. 가장 우려되는 문제로는 복수응답을 포함해 ‘돌봄·간병 부담 증가’(74%)가 꼽혔다. 이어 ‘노인 빈곤 증가’(71%), ‘의료비 증가’(71%) ‘고독사 증가’(65%) 등으로 집계됐다.


‘부모를 직접 돌봐야 하는 상황’에 대해선 응답자 88%가 ‘부담이 될 것 같다’고 답했다. 이유로는 ‘기존 일을 그만둬야 할까 봐 걱정’(80%) ‘우울감 및 스트레스’(75%) ‘가족 간 갈등’(70%) 등이 꼽혔다.

허요환 안산제일교회 목사는 이날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돌봄 문제는 단지 ‘누가 돌보느냐’의 문제를 넘어 사회의 가치관이 무너진 결과를 반영한다”며 “성경이 말하는 공동체 정신을 회복할 때, 돌봄 사역도 살아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제는 교회가 개인의 영성뿐 아니라 공동체성을 회복해야 할 시점”이라고 덧붙였다.

공동체적 돌봄을 제안한 허 목사는 “성도가 스스로 돌보는 주체가 될 때 자기 신앙을 새롭게 돌아보는 계기도 된다”며 “시야가 넓어지고, 인식이 바뀌고, 공동체 감각을 회복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교계 전문가들 역시 돌봄 위기의 대안으로 교회의 ‘노노(老老) 케어’ 모델을 주문한다. 교회 내 정정한 노인들이 돌봄의 주체가 돼 다른 노인들을 돌보는 모델이다.

정재영 실천신학대학원대 교수는 “이제까지 교회의 사회참여는 단기적 구제나 봉사가 많았으나 이제는 민간 차원의 사회안전망으로서 교회가 기능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교회 재정이 충당되는 선에서 NGO나 법인을 설립하는 방식도 돌봄을 위해 필요하다고 했다. 기독교윤리실천운동 공동대표인 조성돈 교수는 “정부 중심 복지만으로는 한계가 있는 만큼, 교회가 정책적으로 돌봄 시스템에 참여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며 “마을 전체가 곧 교회라는 인식 아래 전도나 봉사를 넘어 지역사회 전체를 책임지는 신앙 공동체로 나아가야 할 때”라고 조언했다.

김동규 기자 kky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