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80여명 정책 제안
가격 인상·광고 규제 등 요구
2015년 이후 금연정책 뒷걸음
예산 1500억 → 900억 매년 감소
정부 손놓은 사이 흡연율 급상승
전문가 “OECD 평균 1만원은 돼야”
가격 인상·광고 규제 등 요구
2015년 이후 금연정책 뒷걸음
예산 1500억 → 900억 매년 감소
정부 손놓은 사이 흡연율 급상승
전문가 “OECD 평균 1만원은 돼야”
‘2030년까지 성인 남성 흡연율을 25.0%(여성은 4.0%)로 낮춘다.’
2021년 초 정부가 발표한 제5차 국민건강증진종합계획, 이른바 ‘HP 2030’의 금연 정책 분야 최종 목표다. 계획에는 담배 수요와 공급을 줄이기 위해 담뱃값 인상, 소매점 담배 진열·광고 금지, 담뱃갑 경고 그림 확대, 광고 없는 표준담뱃갑 도입, 모든 건축물 실내 전면 금연 등이 포함됐다. 세계보건기구((WHO)가 국제담배규제기본협약(FCTC)에 근거해 한국 등 비준국들에 권고하는 주요 담배규제 정책이다.
특히 가장 비용 효과적인 정책으로 담뱃세 인상, 담배 광고 전면 금지, 공공 실내 공간의 전면 금연이 꼽힌다. 한국은 2015년 담뱃값 인상과 금연치료 건강보험 지원, 2016년 담뱃갑 경고 그림 도입 등을 통해 일부 진전을 이뤘으나 이후 담배규제 정책은 사실상 실종 상태다. 3가지 핵심 정책은 HP 2030에 들어있지만 추진 기간 10년 중 절반이 지나도록 추가 시행되지 않거나 여전히 미흡한 수준이다. 더 큰 문제는 담배규제 및 금연지원 서비스에 투입되는 예산이 2015년 1500억원에서 2025년 900억원으로 계속 줄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정책 정체는 결국 심각한 결과로 이어졌다. 1998년 정부의 조사 시작 이후 계속 감소하던 흡연율이 2023년 남녀 모두에서 증가세로 돌아섰다. 성인 남성 (궐련) 흡연율은 2022년 30.0%에서 2023년 32.4%로, 성인 여성 흡연율은 5%에서 6.3%로 상승했다. 흡연율의 큰 폭 증가는 전례가 없는 일이다. 이는 결국 국민 건강 수준의 악화와 공중보건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10년째 4500원 그대로인 담뱃값
이에 금연학계와 금연사업 담당자들이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차기 정부가 시급히 시행해야 할 7가지 담배규제 정책을 제안하고 나섰다. 제안서에는 김현숙 대한금연학회장 등 전문가 83명이 이름을 올렸고 26일 주요 대선 후보 캠프에 전달됐다.
대표 제안자인 조홍준 서울아산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새로 출범할 정부는 지난 10년간의 담배규제 정책 정체와 퇴보를 면밀히 재검토하고 국민 건강을 위한 새로운 정책의 틀을 마련해야 한다”면서 “향후 수십 년간 국민 건강 증진의 초석이 될 중대한 과제들”이라고 밝혔다.
최우선 과제로 꼽힌 것은 담뱃값 인상이다. 선행 연구에 따르면 담배 가격 정책은 담배 소비를 줄이고 흡연율 변화를 꾀하는 데 가장 효과적이다. 담뱃값이 10% 오르면 담배 소비는 약 4% 줄어든다는 보고가 있다. 담뱃값 인상으로 인한 담배 소비 감소 효과는 저소득층에서 더 크게 나타나므로, 결국 흡연 및 건강 불평등 완화에도 도움 된다.
한국은 2015년 담뱃값을 4500원(궐련 20개비 기준)으로 인상한 후 10년간 추가 인상이 없었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평균 담뱃값(9869원)의 절반 수준으로 35위에 해당한다. 이성규 담배규제연구교육센터장은 “2015년 이후 10년간 국민 소득 수준의 상승, 물가 상승률 등을 고려하면 실질 담뱃값은 오히려 하락한 셈”이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현 담뱃값을 OECD 평균인 1만원 수준으로 인상하고 향후 지속적인 담뱃세 인상 방안을 마련할 것을 주문했다. 아울러 가격 인상으로 확보된 재원의 50% 이상을 담배규제 정책 및 금연지원 사업에 투입할 것을 제안했다.
담배 소매점에서의 담배 광고 및 진열 규제의 필요성도 제기됐다. 비흡연자의 흡연을 유도하고 금연에 성공한 사람의 재흡연을 유인하기 때문이다. 편의점 등을 자주 이용하는 청소년에게 더 큰 영향을 미친다. 최근 조사에 의하면 국내 편의점 한 곳당 평균 30개의 담배 광고가 설치돼 있다. 2015년 당시 정부는 학교 절대정화구역(학교 정문서 직선거리 50m 이내) 내 편의점에 담배 광고 금지를 약속했으나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관련 조치는 시행되지 않고 있다.
공공 실내 전면금연, 담배·니코틴 규제법 제정
모든 실내 공공장소에 대한 전면 금연구역 지정 역시 시급하다. 간접흡연 노출을 막기 위해서다. 한국은 2015년 음식점·술집에서의 실내 금연 조치를 도입했으나 일정 규모 이상 시설에만 한정하고 있다. 더구나 실내에 흡연실을 설치할 수 있도록 허용해 간접흡연 노출에 자유롭지 못하다. 조 교수는 “공공장소 실내 금연은 시행에 거의 비용이 들지 않으며 비흡연자는 물론 흡연자들도 적극적으로 찬성하는 정책”이라고 말했다.
담배 포장의 건강경고 면적 확대, 나아가 무광고 표준담뱃갑(플레인 패키징) 도입도 추진돼야 한다. 현재 국내 담뱃갑 건강경고는 앞뒷면의 50%(30% 그림, 20% 문구)를 차지하고 있으나 이를 85% 이상으로 확대해야 한다는 취지다. 무광고 표준담뱃갑은 모든 담배제품의 포장을 동일한 색상, 서체, 크기로 표준화해 담배의 매력을 감소시키는 것이다. 호주 영국 캐나다 프랑스 등이 선도적으로 도입했다.
아울러 ‘담배 및 니코틴 제품 관리법’ 제정의 목소리가 높다. 기획재정부가 관장하는 현행 담배사업법은 담배 제조·유통·진흥과 과세 목적의 법률로, 급변하는 담배시장 현실과 괴리가 크다. 최근엔 합성 니코틴 액상 전자담배, 니코틴 유사체 등 신종 니코틴 제품이 등장했다. 청소년 등 국민 건강에 새로운 위협으로 대두되고 있음에도, 담배사업법은 이를 포괄적으로 규제할 체계적 수단을 제공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따라서 기존 담배뿐만 아니라 니코틴을 포함한 모든 형태 제품을 규제 대상으로 하는 새 제정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 센터장은 “이 법은 규제 권한을 보건복지부에 일임해 공중 보건학적 관점에서 일관된 정책이 추진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WHO FCTC 제2조는 각국이 더욱 강력한 법적 조치를 채택하도록 권장하고 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 영국의 의약 및 헬스케어제품규제기구(MHRA) 등 보건당국이 모든 종류의 니코틴 제품을 관리·규제하는 시스템이 국제적으로 보편적 현상이 되고 있다. 이와 함께 전문가들은 오는 11월 시행되는 ‘담배 유해성 관리법’의 실행력 강화 조치 마련과 금연 예산 축소에 따른 취약계층의 금연 접근성 하락 및 건강 형평성 문제 해결을 위해 향후 금연정책에 재정 우선순위를 둘 것을 촉구했다.
미래세대 건강 보호 과감한 정책 추진 필요
정부의 HP 2030 ‘남성 흡연율 25%’ 목표 달성은 담뱃값 인상과 비가격 정책들이 포괄적으로 이뤄져야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2023년 말 서울대 보건대학원의 대한금연학회지 발표 논문에 따르면 비가격 정책 강화만으로는 HP 2030 목표 달성이 불가능한 것으로 예측됐다.
담배 가격 단일 적용의 경우 매년 담뱃값의 30% 이상, 즉 2030년까지 2만8237원 이상으로 인상하는 경우에만 남성 흡연율 25.2%로 HP 2030 목표에 근접할 수 있었다. 반면 포괄적 강화 시나리오에선 비가격 정책의 전면적 시행과 함께 담뱃값을 매년 10%씩 올려 2030년까지 8769원으로 인상할 경우 2030년 남성 흡연율이 24.7%로 목표치 아래로 내려가는 거로 추정됐다. 연구에 참여한 인하대의대 박수잔 교수(보건학 전공)는 “HP 2030 목표 달성을 위해선 체계적인 담배규제 정책 강화 전략과 적극적 이행 노력이 따라야 한다”면서 “특히 흡연율 감소를 위해선 보다 적극적인 담뱃값 인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청소년 등 미래세대의 건강을 더욱 효과적으로 보호하기 위해 궁극적으로 ‘담배 종결전(Tobacco endgame)’을 추진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는 정해진 기간에 흡연율 혹은 담배 사용률을 5% 미만으로 낮추는 걸 목표로 한다.
한국건강증진개발원에 따르면 현재 뉴질랜드 호주 영국(스코틀랜드 포함) 스웨덴 캐나다 등 10개국이 해당 목표를 수립해 정책을 추진 중이다. 서울대 보건대학원 강희원 연구교수는 “담배 종결전에 다가가기 위한 전제 조건을 살펴본 결과 FCTC가 권고하는 핵심 규제 정책들 즉, ‘엠파워(MPOWER)’의 충실한 이행이 공통적으로 요구된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글·사진=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