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김문수 국민의힘, 이준석 개혁신당, 권영국 민주노동당 대선 후보가 연이어 분권형 권력구조 개헌 공약을 발표한 것은 그동안 지지부진했던 범국민 개헌 추진운동에 큰 활력을 불어넣는 계기가 됐다. 오랫동안 대한민국헌정회, 시민사회단체, 지방자치단체, 학계를 비롯해 많은 국민의 분권형 권력구조 개헌 요구에 화답하는 모양새가 돼 더욱 고무적이다.
헌정회(회장 정대철)는 정치권의 극심한 대립과 갈등을 해소하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한 국가적 과제라는 판단에 2023년부터 헌법개정위원회를 구성, 운영해 왔다. 이후 헌법 개정안을 마련하고 시민사회단체, 학계, 지자체 등과 함께 간담회, 토론회, 전국순회 결의대회, 원로 모임 등을 개최해 분권형 권력구조 개헌의 필요성을 주창해 왔다.
아이러니하게도 현행 헌법은 제왕적 대통령과 단원제 국회가 충돌할 경우 이를 중재·조정하는 장치인 내각불신임제, 의회해산제, 국회 상원제가 없어 마치 대통령 임기 내내, 또는 의원 임기 내내 무한 정쟁을 보장하는 헌법처럼 오해받기 십상이다. 따라서 대통령중심제를 전제할 때는 반드시 책임총리제 등 대통령 권력의 분산과 양원제 등 국회 권력 분산, 그리고 지방분권 등 분권형 권력구조 개헌이 정치권의 극심한 대립과 갈등을 해소하는 최선의 길이라고 본다.
다행히 네 후보의 공약에 대통령 권력 분산은 어느 정도 반영됐으나 국회 권력의 분산 및 지방분권에 있어선 다소 미흡하다. 이는 앞으로 개헌 추진 과정에서 반드시 보완할 부분이다. 특히 국회 권력 분산과 관련해 국회 양원제는 주요 7개국(G7), 인구 1200만명 이상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등에서 오랜 경험을 축적해 시행 중인 민주주의의 근간으로, 우리나라도 제2공화국 때 시행한 경험이 있다. 지역 대표형 상원제를 전제로 한 국회 양원제는 국회 내 자율조정 통제 기능을 부여해 단원제 국회의 입법 독주를 견제하는 기능을 하게 될 것이다. 또 지방분권과 균형 발전의 보루 역할을 전담해 이미 가시화된 지방 소멸이란 국가적 위기를 극복하는 일거양득의 수단이 될 수도 있다.
지방분권과 관련해 이재명 후보의 지방자치·지방분권을 위한 헌법기관 신설 공약은 국회 지역대표형 상원제로 귀결되면 좋을 것이다. 지자체 명칭을 지방정부로 변경하자는 권영국 후보의 공약은 지자체들이 오랫동안 요구해온 내용이다.
이번 개헌 움직임은 국민소득이 불과 3000달러 수준이던 1987년의 제9차 개헌 이후 38년 만에 찾아온 절호의 기회다. 이를 꼭 실현시키기 위해 각 주체가 해야 할 일들이 있다. 첫째, 대통령 당선인은 당선 즉시 개헌 로드맵을 제시해야 한다. 둘째, 국회의장은 초당적 개헌특위를 발족해 대통령과 함께 개헌안을 조기 확정할 필요가 있다. 셋째, 헌정회·시민사회단체·지자체·학계 등은 범국민적 개헌 분위기 조성에 앞장서야 한다. 넷째, 정치권과 국민은 ‘양보 없이 개헌은 없다’는 생각으로 대를 위해 소를 양보하는 자세를 갖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다만 전문과 130개조로 구성된 방대한 내용의 헌법을 한꺼번에 개정하려다 모두 실패하는 우를 범하여서는 안 된다. 필자는 여론조사에서 60∼70% 정도의 국민이 지지하는 분권형 권력구조 개헌을 1단계로 2026년 6월 지방선거 때 국민투표를 실시하고, 나머지 부분은 2단계로 2028년 4월 총선 때 국민투표를 실시하는 것이 현실적이고 바람직한 방법이라고 본다. 참고로 헌법 본문은 그대로 두고 필요할 때마다 추가하는 방식인 미국의 수정헌법이나 1949년 제정 이후 76년 동안 60여 차례 수시로 개정해온 독일의 헌법 개정 사례는 우리가 새겨야 할 교훈이다.
이시종
대한민국헌정회
헌법개정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