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 양국은 오랜 우호교류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동시에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 증대, 북한 문제, 양국 국민 간 상호인식 악화 등 다양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 복합적인 한·중 관계의 실마리를 어디에서부터 풀어나가야 할까. “청년이라는 것은 한 사람의 보배요, 한 나라의 보배요, 한 천하의 지극한 보배”라는 독립운동가 이상재 선생의 금언을 떠올려본다. 청년이야말로 한·중 양국을 이어주는 가교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지난해 5월 외교부 장관 방중을 계기로 우리 측은 코로나19 등으로 중단된 다양한 청년 교류사업을 재개하기 위한 중국 정부의 적극적 지원을 당부하면서 청년교류 확대 중요성에 대한 공감대를 이끌어냈다. 이후 양국 간 주요 청년 교류사업이 하나둘씩 복원됐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KF 한·중 청년 교류사업’이 지난해 8월 재개돼 우리 청년대표단이 5년 만에 중국 땅을 밟았다. ‘한·중 청년 외교관 교류사업’이 올해 7년 만에 재개됐고, ‘한·중 청년 미래 우호증진단’ 사업 역시 지난해 2년 만에 재개됐다. 필자도 지난 4월 ‘중국 청년대표단 방한 환영식’과 ‘제3회 우호증진단 발대식’에 참석해 이러한 긍정적 흐름을 직접 느낄 수 있었다. 행사장에서 만난 양국 미래세대의 밝고 활기찬 모습에서 한·중 관계의 희망을 볼 수 있었던 뜻깊은 시간이었다.
올해는 특별히 광복 80주년을 맞아 우호증진단 사업의 일환으로 양국 청년들이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이동 경로를 탐방하는 동행길에 오른다. 특히 우리 국민에게 비교적 잘 알려진 상하이와 충칭이 아닌 창사, 광저우, 류저우 등을 방문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1938년 우리 임시정부는 40여일간 목선을 타고 광저우에서 류저우로 주강을 거슬러 올라가며 ‘강물 위에 뜬 망명정부’ 시기를 거쳤다. 독립운동가 양우조·최선화 부부의 ‘제시의 일기’에 따르면 이 과정에서 우리 임정 요인들과 그 가족들은 중국 각계의 도움으로 목선을 확보하고, 선박까지 무사히 짐을 운반할 수 있었다. 강물 위에서는 중국 선원들과 함께 밥을 지어 먹었고, 여울을 만나 배가 움직이지 못할 때에는 힘을 합쳐 배를 끌어올리며 동고동락했다.
우호증진단의 이번 여정은 양국의 오랜 역사적 유대관계를 재조명하는 시간이 될 것이다. 양국 관계의 ‘미래’ 주역인 청년들이 ‘과거’의 역사를 되짚으며 생각과 마음을 나누고, ‘현재’의 한·중 관계에도 깊은 울림과 통찰을 제공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물론 청년 간 교류 활성화가 양국 관계의 복합적 과제를 일거에 해결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본래 길이 없어도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곳이 곧 길이 되듯 양국 청년들이 함께 내딛는 작은 발걸음이 모여 한·중 관계를 더 나은 길로 열어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그 희망찬 한 걸음, 한 걸음에 뜨거운 응원의 마음을 보탠다.
정병원 외교부 차관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