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들어 유럽 전기차 시장에서 대부분 브랜드가 판매량을 크게 끌어올리면서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을 극복하는 모습이 감지되고 있다. 지난해 왕좌에 올랐던 테슬라만 실적이 급감하며 지난달엔 ‘톱10’에서도 밀려났다. 유럽 전기차 시장에 새판이 열리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25일 시장조사업체 자토다이내믹스에 따르면 폭스바겐은 올해 1분기 유럽에서 전년 대비 배 이상 증가한 전기차 판매량 6만5679대를 기록하며 테슬라를 제치고 1위에 올랐다. 스코다(93%), 르노(89%), 기아(59%), 아우디(51%), 현대자동차(28%), BMW(21%) 등 대부분 전기차 업체도 두 자릿수 성장률을 기록했다. 올해 1~4월 유럽 전체 자동차 판매량(447만737대)이 1년 전보다 0.3% 감소한 상황에서 거둔 성적표다.
유럽에서 전기차가 질주하는 배경엔 유럽연합(EU)이 올해부터 시행하는 ‘자동차 탄소 배출 규제’가 영향을 미쳤다. EU 집행위원회는 2025~2027년 생산하는 신차의 평균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2021년 대비 15% 낮은 ㎞당 93.6g으로 정했다. 이를 초과하는 업체에 g당 벌금 95유로(약 15만원)를 물리기로 했다. 완성차업계 관계자는 “가장 먼저 탄소 규제를 본격화한 유럽에서 캐즘을 벗어나는 조짐이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 브랜드의 선전도 캐즘 극복을 견인했다. 지난달 유럽에서 팔린 중국산 전기차는 1만5300대로 전년 동기 대비 59% 증가했다. 특히 BYD는 판매량을 배 이상 끌어 올리며 테슬라보다 많은 7231대를 기록했다. EU 집행위원회는 ‘중국 전기차 굴기’를 막기 위해 지난해 10월 중국산 순수 전기차에 대한 관세율을 최고 45.3%로 올렸지만 중국 업체들은 플러그인하이브리드차(PHEV) 등으로 유럽시장을 공략했다. BYD의 스포츠유틸리티차(SUV) ‘실 유’(SEAL U)는 지난달 PHEV 판매량 1위(6083대)에 올랐다. BYD 소형 SUV 시걸은 2만2990유로(약 3574만원)로 관세를 적용하더라도 경쟁 모델 중 가장 저렴하다.
테슬라만 입지가 완전히 쪼그라들었다. 지난달 판매량은 전년 동기 대비 49% 고꾸라지며 유럽 진출 후 처음으로 10위 밖으로 밀려났다. 펠리페 뮤노스 자토다이내믹스 애널리스트는 “테슬라는 2014년 유럽에 진출해 전기차 시장을 선도했고 BYD는 2022년에 론칭했다. 지난달 판매량 통계는 유럽 전기차 시장의 분수령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로이터는 “노후화된 모델 라인업과 일론 머스크 테슬라 대표이사(CEO)의 정치 행보가 판매량 감소에 영향을 줬다”고 분석했다.
현대차그룹도 빠르게 확장하는 유럽 전기차 시장을 적극적으로 공략하고 있다. 최근 출시한 EV3, 인스터(국내명 캐스퍼 일렉트릭), 아이오닉9 등 전용 전기차와 스포티지, 투싼 등 하이브리드차를 앞세워 점유율 확대를 노린다는 방침이다.
이용상 기자 sotong20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