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백악관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주한미군이 전 세계에 배치된 미군 재조정 계획의 주요 타깃이 될 수 있다는 관측이 이어지고 있다. 차기 정부가 출범하는 대로 주한미군 규모와 방위비 분담금을 둘러싼 미국의 압박이 본격화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주한미군 역할은 대북 억제보다 대중 견제에 무게를 둬야 한다는 미 고위 당국자들의 발언도 계속되면서 국내 일각에서는 자체 핵무장론도 재차 고개를 드는 상황이다.
외교부 고위직을 지낸 한 인사는 25일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주한미군 재조정이 외교가에서 빈번히 회자돼 왔고, 최근 이와 관련해 비교적 구체적인 현지 보도가 나온 것은 백악관 내에서 주한미군 규모 및 역할을 조정하기 위한 여러 논의가 진행 중이라는 점을 말해준다”고 분석했다.
미 국방부가 주한미군의 약 16%인 4500명을 괌 등 인도·태평양 내 다른 지역으로 재배치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는 월스트리트저널(WSJ)의 최근 보도는 그냥 넘기기 어렵다는 취지다.
미 국방부가 본토 방어와 중국 억제를 최우선순위로 둔 새 국가방위전략(NDS)을 수립하고 있다는 점도 주한미군 재조정설에 힘을 싣는다. NDS 수립을 주도하고 있는 엘브리지 콜비 국방부 정책차관은 대중 견제를 위해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이 필요하다고 여러 차례 언급해 왔다. 미국은 한국에 확장억제를 보장하되 대북 재래식 방어는 한국이 주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는 “미국이 주한미군을 괌 등으로 이전시키려 한다면 그 목적은 중국을 효과적으로 견제하기 위함일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주한미군 감축설이 트럼프 행정부의 방위비 인상 압박 예고편일 수 있다는 해석도 내놨다. 미국이 한국의 새 정부에 보낼 ‘안보 청구서’ 작성에 들어갔다는 것이다. 방위비 분담금 협상에 관여했던 한 인사는 “차기 정부는 트럼프 행정부의 주한미군 정책이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출범하게 된다”며 “주한미군 규모·역할과 방위비 분담금 재협상을 두고 대미 협상에 곧장 돌입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트럼프 행정부는 특히 관세 협상과 안보 협상을 병행하며 각각을 지렛대로 삼을 가능성이 크다”며 “반대급부 전략을 치밀히 준비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주한미군 감축설 배경에 북·미 정상회담을 위한 사전작업의 성격도 있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실제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미 웨스트포인트 육군사관학교 졸업식에서 ‘미국 우선주의’를 언급하며 “의견 차이가 매우 큰 국가와도 언제나 화해하고 협력을 모색하는 것을 선호한다”고 말했는데, 그 대상이 북한이 될 수 있다는 해석이다.
전문가들은 주한미군 재조정이 현실화할 경우 중국과 북한에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는 만큼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주한미군의 규모가 줄거나 역할이 바뀐다면 북한이 이를 한·미동맹 약화로 해석해 핵전력을 고도화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박민지 기자 p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