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가 중국 조선업에 대한 견제를 본격화하면서 글로벌 선사들의 상선 발주가 중국에서 한국으로 이동하고 있다. 군함 분야에서도 미국과 중국의 조선 역량 격차가 벌어지면서 한국 조선소가 기술력과 신뢰도를 바탕으로 글로벌 공급망 재편의 중심에 서는 분위기다.
25일 조선 업계에 따르면 세계 5위 컨테이너 선사인 독일 하팍로이드는 기존에 중국 조선소에 발주하려 했던 추가 물량을 한국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앞서 하팍로이드는 1만2500TEU급(20피트 컨테이너 약 1만2500개를 한 번에 실을 수 있는 크기) 액화천연가스(LNG) 이중연료 추진 컨테이너선 12척, 1만6000TEU급 LNG 추진선 최대 8척을 중국 뉴타임즈조선과 양쯔장조선에 맡기는 안을 검토했으나 미국의 중국산 선박 견제 강화 기조에 따라 한국 조선사와 협상하기로 입장을 선회한 것이다.
컨테이너선은 그간 중국 조선소의 점유율이 높았던 분야지만 미국의 규제와 글로벌 공급망 리스크가 커지면서 한국 조선소가 대안으로 떠올랐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지난달 중국 해운사나 중국산 선박을 운용하는 해운사에 대해 미국 입항 수수료 부과 계획을 밝히며 사실상 중국산 선박에 대한 경제적 불이익을 예고했다. 하팍로이드가 기존 파트너인 중국을 제쳐두고 새 발주처를 찾는 이례적인 결정을 내린 배경이다. 다만 한국 조선소가 중국보다 척당 최대 3500만 달러(약 478억8000만원) 비싼 견적을 제시하면서 하팍로이드는 다시 중국 측과도 접촉을 이어가는 중이라고 조선·해운 전문지 트레이드윈즈는 전했다.
군함 분야에서도 한국 조선소의 입지는 커지고 있다. 미국의 조선 역량 저하와 중국의 해군력 확장세가 맞물리며 군함 분야에서 한국이 믿을 만한 대안으로 부상한 것이다. 미국은 지난 20년간 조선업 예산을 배로 늘렸음에도 군함 건조 지연과 공급망 붕괴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버지니아급 잠수함, 콜롬비아급 전략잠수함, 포드급 항공모함 등 핵심 전력의 납기가 줄줄이 미뤄지고 있고, 엔진·부품 공급망도 불안정해 최소 인력 유지조차 어려운 상황이다. 반면 중국은 민간과 군수 생산이 결합된 조선소를 바탕으로 빠르게 해군력을 확대 중이다. 중국 해군은 이미 미국보다 많은 군함을 보유하고 있으며, 주요 조선소는 구축함과 항공모함을 2~3년 이내에 대량 생산할 수 있는 체제를 갖췄다.
이에 미국은 한국 등 동맹국 조선소에 군함 건조를 요청할 수 있도록 존스법과 번스-톨레프슨법 완화 등을 추진하고 있다. 관련 법안은 미 의회에 발의돼 논의 중이다. 미 해군 및 정부 고위 인사는 공식적으로 한국 조선소와의 협력 의지를 표명하고 건조 및 유지·보수·운영(MRO) 분야에서의 실질적 협업 추진도 밝히고 있다. 존 펠란 미 해군성 장관은 HD현대중공업 울산 본사와 한화오션 거제조선소를 방문하기도 했다.
백재연 기자 energ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