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하버드대에 내린 유학생 등록 금지 조치에 대해 일단 법원이 제동을 걸었지만 미국 대학들 사이에서는 공포가 확산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하버드대를 ‘본보기’로 옥죄면서 유사한 압박에 놓인 많은 대학들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고심 중이다.
뉴욕타임스(NYT)는 24일(현지시간) 트럼프 행정부의 조치가 대학의 학문 자율성에 대한 위협으로 다가왔다며 “대학 총장들은 연방정부의 단 한 번의 조치로 외국인 학생들을 수용할 수 있는 권한이 사라질 수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고 전했다.
샐리 콘블루스 매사추세츠공과대(MIT) 총장은 교내 구성원들에게 보낸 메시지에서 “지금은 중대한 시간”이라고 밝혔고, 웬디 헨셀 하와이대 총장도 트럼프 행정부의 조치가 “고등교육 전반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대학 내 ‘반유대주의’ 근절을 명분으로 주요 대학에 보조금 동결을 압박했다. 특히 국토안보부는 지난 22일 하버드대가 학생들의 시위 활동 내역을 공개하라는 요구를 거부하자 ‘유학생·교환 방문자 프로그램(Student and Exchange Visitor Pr ogram·SEVP)’ 인증을 취소했다. 하버드대가 즉각 효력 중단 가처분을 신청했고, 23일 법원이 이를 받아들이면서 일단 유학생 등록은 예전처럼 가능한 상태지만 많은 대학이 불안에 떨고 있다. 크리스티 놈 국토안보장관도 언론에 나와 다른 대학에도 하버드대와 유사한 조치를 고려 중이라며 “이는 다른 모든 대학에 행동을 바로잡게 하는 경고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존 오브리 더글러스 UC버클리대 선임연구원은 NYT에 “하버드대가 당장 피해자이긴 하지만 (이번 조치는) 모든 주요 대학의 자율성을 약화시키려는 적대적인 정부의 전례 없는 시도이자 경고”라고 지적했다.
미국 전역에선 지난 25년간 해외 유학생 등록이 2배로 증가해 현재 100만명 이상의 유학생이 미국에서 공부하고 있다. 유학생은 미국 전체 대학생의 5%를 약간 넘지만, 주요 명문 사립대에선 그 비중이 훨씬 높다. 하버드대에선 전체 학생의 27% 정도가 유학생이다.
유학생들은 학비뿐 아니라 주거비과 보험, 식비 등에서 미국 국내 학생들보다 더 많이 소비를 하고 있다. 더힐은 “하버드대 유학생을 차단하려는 트럼프 행정부의 노력은 경제에서도 막대한 대가를 치를 수 있다”며 “유학생들은 비즈니스에 기여하는 것 외에도 각 지역에서 지출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며 미국 경제에 약 440억 달러(60조1900억원)에 달하는 지출을 발생시키고 있다”고 전했다.
하버드대가 소재한 매사추세츠주의 경우에도 매년 외국인 유학생 지출로 약 40억 달러의 경제 효과를 누리고 있는데 이 중 약 10%가 하버드대에서 발생한다.
워싱턴=임성수 특파원 joyls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