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잡스가 남긴 유명한 사진 하나는 자기 집 서재에서 찍은 것이다. 가구랄 게 없는 텅 빈 방, 외롭게 선 스탠드 조명 아래서 그는 뭔가 읽을거리를 손에 들고 바닥에 앉아 있었다. 종종 함께 언급되는 다른 사진에선 아이패드를 쥐고 1인용 소파에 앉았는데, 르 코르뷔지에가 디자인한 소파였다. 공간을 채우기보다 비우는 데 열중했던 그는 서재에 책상도 들여놓지 않았고, 철제 뼈대에 두꺼운 시트를 툭 얹어놓은 아주 단순한 의자를 애용했다.
잡스의 이런 기호를 아이폰에 구현해준 영국 출신 디자이너 조니 아이브 역시 특이한 인물이다. 그의 집도 뭐가 너무 없어서 사람들이 놀라곤 했다는데, 2019년 애플을 떠나 차린 다자인업체 ‘러브프롬’의 홈페이지에도 회사 이름만 달랑 적혀 있다(화면에서 유일하게 클릭되는 그 이름을 누르면 아이브가 만든 회사라는 아주 짧은 설명이 나온다).
버튼으로 뒤덮인 블랙베리 스타일의 휴대폰이 대세였던 시절, 전면 스크린에 버튼 하나만 겨우 남긴 아이폰의 등장은 두 사람의 집착에 가까운 미니멀리즘에서 비롯됐다. 터치스크린 업체를 인수해 구현했는데, 기술이 이런 디자인을 낳은 건지, 디자인 철학이 그런 기술을 찾아낸 건지 모호할 만큼 ‘세상에 없던’ 스마트폰의 출현에 아이브가 차지한 몫은 컸다. 그는 “가장 단순한 것이 가장 중요한 말을 한다”고 했다. 아이폰 이후, 거추장스러운 걸 하나둘 제거하는 과정은 사물의 본질에 다가서는 길로 여겨지고 있다.
애플에서 나와 조용히 활동하던 그가 최근 오픈AI에 합류했다. 샘 올트먼과 함께 인공지능(AI) 단말기를 내놓을 거라 한다. 그게 무엇일지 감이 잡히지 않아 외신마다 AI 하드웨어, 디바이스, 가제트 등 중구난방 부르고 있다. 알려진 힌트는 전화나 안경이 아니고, 웨어러블도 아니고, 스크린도 없이, 주머니에 넣고 다닌다는 것 정도. 아이폰이 첫해 1400만개 팔렸는데 올트먼이 1억개를 언급한 걸 보면, 세상에 없던 것을 만들었다고 여기는 듯하다. 스마트폰에 그랬듯이, 우리 일상이 또 한 번 바뀔지도 모르겠다.
태원준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