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홍보 없애고 자체 조달망 갖춰
최저가 위해 극단적 비용절감 추구
배달·픽업 도입해 팬데믹도 이겨내
4차 산업혁명에도 10대 기업 ‘우뚝’
최저가 위해 극단적 비용절감 추구
배달·픽업 도입해 팬데믹도 이겨내
4차 산업혁명에도 10대 기업 ‘우뚝’
창업 60년이 지난 소매업체지만 막강한 신생 디지털 강자들에 맞서 정면대결하는 강인한 기업이 있다. 애플과 구글, 테슬라, 아마존 같은 4차 산업혁명 기업들로 붐비는 세계 10대 기업 리스트에 당당히 이름을 올리고 있는 월마트다.
고정관념에 도전한 창업 전략
1962년 미국 중남부 아칸소주 소도시 로저스에서 샘 월튼이 세계 소매업을 근본적으로 바꿀 잡화점을 창업했다. 작은 상점 하나로 출발한 월마트는 “고객이 절약을 통해 더 잘살도록 돕겠다”는 비전을 향해 끊임없이 변화해 왔다. 월마트는 ‘상시 최저가’ 전략을 통해 급성장해 2025년 현재 전 세계에 1만1500개 넘는 다양한 매장과 전자상거래 시스템으로 소매유통업을 선도하고 있다.
1987년까지 최고경영자(CEO)였던 창업자 월튼은 1945년 벤 프랭클린 프랜차이즈의 한 소매점을 구입해 끊임없는 변화를 통해 급성장했다. 그는 혁신과 모방을 가리지 않고 모든 변화에 적극적이었는데, 이 과정에서 상시 저가 할인점이 소매업의 미래라고 확신한 월튼은 독립해 1962년에 인구 6000명의 로저스에 첫 번째 월마트 상점을 창업하고 지역별 체인 형태로 계속 점포를 늘려 나갔다. 월마트 창업은 인구가 최소 5만이 돼야 할인소매점이 가능하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소규모 할인점이라는 새로운 모델을 제시한 것이었다.
월마트는 별도 세일 기간 없이 월마트에만 오면 항상 최저가 쇼핑이 가능한 상시 저가 전략으로 급성장했다. 이를 위해 월튼은 광고나 홍보를 아예 없앴고, 중간 공급업체를 배제하고 자체 조달센터를 지역별 허브로 삼아 매장들을 근거리에 배치해 극단적 비용 절감을 추구했다. 또 현장경영을 강조했는데, 관리자들에게 수시로 자기 상점과 경쟁점을 방문해 끊임없이 개선할 점을 발견해 즉시 바꾸도록 했다. 변화 시도에서 실패도 드물지 않았으나 실패가 두려워 시도하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다며 끊임없이 도전하며 급성장했다.
업태 다양화와 국제화, 그리고 정체
1999년까지 CEO였던 데이비드 글래스의 임기 동안 월마트는 K마트를 제치고 미국 최대 소매점으로 등극했다. 글래스는 대형 매장인 슈퍼센터와 창고형 할인점 샘스클럽, 기존 할인점에 식음료와 주유소까지 합친 홈타운스토어, 슈퍼마켓에 다양한 상품군과 드라이브스루 약국까지 갖춘 네이버후드 마켓 등 새로운 업태를 시도했다. 또 고급 식자재 샘스 아메리칸초이스를 시작으로 다양한 자체 브랜드도 출시했다. 특히 1991년에 도입한 컴퓨터 재고관리 시스템은 중간 브로커업체를 배제하고 각 납품업체에 매장의 자기 상품 재고를 직접 체크해서 유지할 권한을 주어 획기적인 원가 절감을 달성했고, 1990년대부터 국제화도 적극 추진했다. 이 기간 월마트는 매출이 10배 이상 성장해 세계 최대 소매업체가 됐다.
후임자로 2008년까지 CEO였던 리 스콧의 취임 직후 닷컴버블 붕괴로 대부분 산업이 성장세가 꺾였으나 월마트는 다양한 업태들 간 상호보완성에 기반해 꾸준한 성과를 유지했다. 스콧도 다양한 신사업을 시도했으나 대부분 신생 디지털 경쟁자들에 막혀 고전했다. 수익성 저하가 계속되자 그는 신사업 진출을 중단하고 원래 핵심 경쟁력인 기존 소매업에서의 초저가 전략에 기반한 경쟁으로 되돌아가 기본을 철저히 다졌는데 2008년 금융위기가 발생하자 기본이 강해진 월마트는 상대적으로 좋은 성과를 창출했다.
스콧의 뒤를 이어 마이크 듀크가 2013년까지 CEO를 맡았는데 핵심 관심사는 지속적 수익성 감소에 대응하는 것이었다. 듀크는 슈퍼센터와 기존 할인매장의 추가를 중단하고 대신 수익성 좋은 네이버후드 마켓을 대폭 늘려 성장을 추구했고, 월마트 익스프레스나 월마트 온 캠퍼스 등 새로운 업태를 시도했으며, 해외 사업도 성장해 수익의 30% 정도를 차지하게 됐다. 그러나 전자상거래에서는 아마존에 밀려 고전을 면치 못했다. 듀크가 이끌었던 5년간 매출 증가가 3.3%에 그쳐 드디어 월마트의 고성장 시대가 끝났다는 회의론이 만연했다.
옴니채널 전략으로 아마존과 맞대결
월마트를 강인한 경쟁자로 회복시킨 주역은 2014년 취임해 현재까지 CEO인 더그 맥밀런이다. 맥밀런은 먼저 구조조정으로 비슷한 업태의 월마트 익스프레스를 네이버후드 마켓으로 통합했고, 샘스클럽이 코스트코와의 경쟁에서 뒤지자 하이엔드 창고형 할인점으로 재탄생시켰다. 월마트 인터내셔널을 통한 국제화도 계속 시도했고, 소규모 편의점인 월마트-투-고와 초저가 수표계좌 서비스인 고뱅크 등 다양한 업태도 계속 선보였다.
최대 관심사는 아마존과의 일전이었다. 아마존은 세계 온라인 소매시장의 절반을 점유하며 월마트를 압도했고 기업 가치는 상대가 안 될 정도였다. 맥밀런은 소매업의 디지털화에 정면 대응하기 위해 옴니채널 전략을 제시했다. 2018년에 맥밀런은 어떤 채널이나 매장에서 쇼핑을 시작하더라도 다양한 온오프 채널을 경계 없이 총동원해 고객 만족을 극대화하는 옴니채널 유통업체로 재탄생하겠다고 선언했다. 특히 아마존이 못 가진 오프라인 매장의 경쟁력을 온라인과 결합해 광범위한 지역에 소재한 매장을 활용한 식료잡화 배달이나 픽업 서비스 등으로 온라인에 제한된 아마존을 압도하겠다는 것이다.
결정적 계기는 코로나19 팬데믹이었다. 월마트는 지역 인프라를 온라인 고객 네트워크와 결합해 고객별 백신 스케줄표를 만들고 가까운 매장에서 접종받을 수 있게 했고, 또 월마트 약국 계정에서 백신카드를 제공했다. 또 장기간 갇혀 지낸 고객들을 위해 매장 주차장을 이용한 자동차 극장과 어린이 캠프를 시작했다. 특히 월마트의 강점인 생필품을 온라인으로 구입하면 집으로 배달해주는 서비스는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반면 팬데믹으로 급증한 온라인 주문을 오프라인 배송 인프라가 따라잡지 못한 아마존은 생필품과 식료품 등에서 품절 대란이 일어났고 프라임 멤버 회원들도 제때 배송받지 못하는 경우가 속출했다. 그 결과 팬데믹 이후 월마트의 성장률이 아마존을 크게 상회하며 2024년에는 사상 최대 매출을 기록했다. 특히 아마존이 최근 클라우드와 우주 사업 등으로 다각화하고 있는데 비해 월마트는 소매유통업에만 선택과 집중하며 끊임없이 변화와 혁신을 시도해 왔다는 면에서 월마트가 승리할 수도 있다는 예측도 나오고 있다.
변화하지 않으면 사라지는 수밖에 없다
맥밀런은 “유통업의 역사는 단순명료하다. 변화하지 못하거나 변화하고 싶지 않은 기업은 사라지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기업만 살아남는다”고 단언한다. 월마트는 지난 60여년 동안 다양한 업태와 시스템을 시도하며 끊임없이 변화해 왔지만 ‘상시 최저가’ 전략을 통해 고객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겠다는 비전은 흔들리지 않고 지켜왔다. 맥밀런은 글로벌 소매유통업의 미래를 선도하겠다며 월마트는 “성숙한 기업이 아니라 여전히 성장 단계에 있는 기업”이라고 규정한다. 분모가 크기 때문에 성장률이 낮아 보이지만 월마트는 모든 면에서 여전히 계속 성장하고 있는 회사이기 때문에 핵심 이외에는 모든 것을 계속 바꾸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월마트는 우리나라 경제가 성숙기에 접어들어 성장 정체가 불가피하다고 체념하는 정책담당자들과 기업 경영자들에게 큰 교훈을 준다.
신동엽 연세대 경영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