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리사니] 체육 공약 실종

입력 2025-05-26 00:38

생활체육 인구 급증하는데
표가 안 된다고 여기는 건지
대선후보 공약선 찬밥 신세

지금 대한민국은 운동 중이다. 러닝크루 열풍이 전국 공원을 휩쓸고, 주말마다 테니스장·배드민턴장 예약 경쟁은 전쟁을 방불케 한다. 파크골프장은 항상 붐비고, 공공체육관은 만석이다. 아침저녁으로 운동화 끈을 조이고 라켓을 쥐는 사람들로 도시가 들썩인다. 운동은 이제 유행을 넘어 일상이 됐다.

하지만 선거판은 묘하게 조용하다. 오는 6월 3일 제21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후보들은 연일 경제, 부동산, 외교 공약을 쏟아내고 있다. 심지어 가상자산, 반려동물 관련 공약도 나왔다. 그러나 정작 국민 대다수가 매일 뛰고 땀 흘리는 ‘체육’에 관한 공약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체육 공약은 예나 지금이나 정치권에서 홀대받는 분야다.

각 당 후보들의 정책을 살펴봐도 상황은 비슷하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 모두 체육 관련 공약은 거의 언급하지 않았다. 최종 공약집이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체육은 여전히 ‘뒷순위’로 밀려 있다. 그나마 언급된 내용도 2036년 전북 하계올림픽 유치(이재명·김문수), 부산 돔 야구장 건설(이준석) 같은 대형 프로젝트에 그친다. 하지만 올림픽은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선정해야 하는 조건이 필요하고, 돔구장 건설은 수십 년째 반복되는 구호에 가깝다.

국제대회 유치나 대규모 종합경기장 건설이 무의미하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국민이 진짜 바라는 건 훨씬 작고 현실적인 변화다. 공공 테니스장과 배드민턴장 온라인 예약 시스템이 조금 더 편리해지고, 파크골프장에 벤치와 화장실이 마련되며, 야구장에 아이와 함께 갈 수 있는 공간이 생기는 것. 이런 작지만, 구체적인 정책이야말로 국민에게 감동을 줄 수 있다. 체육은 ‘금빛 메달’보다 회색 콘크리트 위 러닝 트랙이 더 절실한 영역이다. 하지만 이런 일상적인 요구에 정치권은 여전히 귀를 기울이지 않고 있다.

왜일까. 이유는 명확하다. 운동하는 유권자는 ‘표’로 뭉치지 않기 때문이다. 러닝크루, 테니스 동호회, 배드민턴 모임은 주말마다 활발히 활동하지만, 정치적 결집력은 약하다. 단체는 있어도 정치적 목소리는 없다. 그래서 정치권에서는 체육을 ‘표가 안 되는 영역’으로 본다.

그러나 숫자는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지난해 프로야구 KBO리그는 사상 처음으로 1000만 관중을 돌파했다. 올해도 역대 최단기간에 400만 관중을 유치하며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프로축구·농구·배구도 열성 팬을 넘어 일반 관중을 끌어들이고 있다. 팬층은 넓어지고 문화는 진화하지만, 관람 환경은 제자리걸음이다. 비싼 입장료, 주차난, 교통 불편은 여전히 팬의 몫이다.

생활체육도 마찬가지다. 집 앞 공원에만 나가도 러너들이 즐비하고, 수영장은 아침부터 밤까지 인산인해다. 파크골프장은 어르신들의 새로운 광장이 됐고, 100만원을 호가하는 운동 장비도 날개 돋친 듯이 팔리고 있다. 체육은 이미 여가가 아니라 ‘삶’이 됐다.

그럼에도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체육관은 여전히 부족하고, 어르신들을 위한 운동 공간은 낡고 협소하다. 장비는 노후했고 예약은 불편하다. 건강을 위해 운동하라면서 정작 운동할 공간은 개인이 알아서 찾아야 하는 실정이다. 러닝크루는 공원과 강가, 학교 운동장을 전전하지만 ‘민폐족’으로 치부되기 일쑤다. 이들은 어디서 뛰어야 하는가.

정치가 무심한 탓이지만, 유권자에게도 책임이 없지 않다. 체육 공약이 사라진 게 아니라, 애초에 요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치란 결국 표를 따라가는 게임이다. 표가 안 되면 공약도 없다. 이제 유권자가 먼저 움직일 차례다. ‘체육 공약은 어디 있습니까’라는 질문 하나가 정치의 방향을 바꿀 수 있다. 크루와 동호회, 생활체육인들이 일상 속에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다면 체육도 당당히 주요 공약으로 떠오를 것이다.

이번 대선판엔 체육이 없지만, 운동장은 오늘도 북적인다. 정치가 눈을 돌리지 않으면 이제 표심이 돌아설 차례다.

김민영 문화체육부 기자 my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