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지역에서 해마다 열리는 책 축제에 다녀왔다. 독립출판사들의 매대를 둘러보며 자신이 만든 책을 설명해주는 것에 열심인 저자이자 출판인들을 많이 만났다. 책 축제에서 해마다 느끼는 것은 누군가는 정말 많은 시간을 들여서 그 책의 내용을 꾸리고 출간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행사장 입구에서 발견한 한국의 요괴에 대한 책도 그렇거니와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피해 현황을 인터뷰한 책, 우리가 까맣게 잊었거나 잘 모르고 있는 순우리말 사전을 일러스트와 함께 집필한 책…. 품이 많이 들었을 책들에 서슴없이 지갑을 열며 한 바퀴를 돌고 나니 챙겨간 장바구니가 불룩해졌다.
이 축제 현장에서 나는 시 낭독 공연을 맡았다. 하늘이 맑고 더위는 누그러진 주말이었기에 모두들 나들이 갔겠지 하는 마음으로 빈 의자들을 바라보았다. 빈 의자들을 가득 메운 채 고개를 끄덕이며 시와 시 이야기를 경청해주는 관람객들 덕분에 집에 돌아오는 길은 좋은 기운이 내게 가득했다. 한켠으로는 다른 상념이 찾아왔다. 무겁고 심각하고 어두운 쪽에 가까울 나의 시를 접하고 집으로 돌아갔을 이들의 마음은 어땠을까. 무슨 마음으로 이들은 이 먼 곳까지 찾아와 전혀 신나지 않은 공연을 1시간이나 지켜보며 앉아 있었을까. 곳곳에 빨간 장미가 피어 있고, 덥지도 춥지도 않고 맑은 어느 주말이 1년 중에 흔하지는 않으니까 말이다.
시는 어쩌다 인간의 불행과 낙담의 순간을 전담하는 그릇이 되었을까. 이따금 하게 되는 생각이지만 나는 이 전담을 당연히 기꺼워한다. 인간의 불행과 낙담에 깃든 인간의 경험은 그 자체로 고귀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불행은 행복보다 더 널리 퍼져 있고 흔해 빠진 것이라서 드물다고 할 수 없지만 고귀하다. 고귀함은 담벼락에 붉은 장미가 피어 있고 하늘이 맑고 바람 없고 선선한 어느 주말의 희소성만큼이나 두 팔 벌려 환영해 마지않을, 다른 방향에서 우리에게 다가오는 기쁨이기도 하다.
김소연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