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이 바이오 양대 성장축인 위탁개발생산(CDMO) 사업과 바이오시밀러(바이오의약품 복제약) 사업을 완전히 분리하는 인적분할을 추진한다. 미래 먹거리인 바이오 부문에서 전략을 재정비해 글로벌 경쟁력을 끌어올리려는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22일 이사회를 열고 오는 10월 1일 자로 ‘삼성에피스홀딩스’를 창립한다고 공시했다. 9월 16일 분할을 위한 주주총회를 거쳐 승인받을 예정이며, 10월 29일에는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변경상장과 삼성에피스홀딩스의 재상장이 예정돼 있다.
이번 분할에는 주력인 CDMO에서 고객사와 경쟁 관계에 놓일 수 있는 바이오시밀러 사업을 떼어내 시장의 신뢰를 높이고 수익성이 높은 신약 사업에 힘을 주겠다는 취지도 담겼다. 시가총액 77조원에 육박하는 삼성바이오로직스를 분할하면 삼성그룹 차원의 재무적 이점이 있다는 판단도 깔려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삼성바이오로직스 관계자는 “최근 국제 통상 환경 변화와 약가 인하 등 대외 정책 불확실성이 증가하는 상황에서 CDMO와 바이오시밀러 사업이 혼재돼 고객사와의 이해상충 가능성이 발생하는 근원적 리스크 요인을 사전에 제거하기 위해 분할을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반도체 설계(팹리스)와 위탁생산(파운드리) 사업을 함께 하는 삼성전자가 파운드리 고객사의 기술 유출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2017년 파운드리사업부를 독립 운영 체제로 전환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CDMO 고객사는 자사 제품을 위탁 생산하는 삼성바이오로직스가 바이오시밀러 기업인 삼성바이오에피스를 거느린 구조에 예민할 수밖에 없다. 김수현 DS투자증권 연구원은 “CDMO 회사가 자체 신약 개발을 하는 건 금기시되기 때문에 현재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모자 회사 구조는 삼성바이오에피스 성장에 다소 걸림돌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회사는 사업 분야와 수익 구조가 완전히 다른 CDMO·바이오시밀러의 특성과 전략에 맞게 신속하고 전문적인 의사결정이 가능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투자자들도 두 분야에 대한 명확한 구분과 판단이 가능해진다. 분할 방식은 인적분할로, 기존 삼성바이오로직스 주주는 삼성바이오로직스와 삼성에피스홀딩스 주식을 각각 0.6503913 : 0.3496087의 비율로 동일하게 배정받는다.
이번 분할로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순수 CDMO 전문 기업으로서 ‘글로벌 톱티어 CDMO’로의 도약을 위한 성장 전략을 본격화한다. 2030년까지 8개 공장, 총 132만ℓ 규모의 생산 능력을 갖춘다는 목표다. 미국·일본 등 글로벌 거점 확보와 함께 글로벌 톱20 제약사 중 17곳을 CDMO 고객사로 확보한 만큼 고객층은 더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바이오시밀러 사업은 지주회사에서 독립적으로 추진한다. 신설되는 삼성에피스홀딩스는 바이오시밀러 전담 운영과 신기술 투자, 글로벌 전략 수립을 전담하는 지주사 역할을 맡는다. 2030년까지 20종 이상의 바이오시밀러 제품 출시를 목표로 한다. 대표이사직은 김경아 삼성바이오에피스 대표이사가 겸임할 예정이다. 차세대 신사업 발굴, 신기술 투자, 글로벌 M&A(인수·합병) 전략 수립까지 포괄적으로 담당하게 된다.
이번 분할이 삼성그룹 핵심 계열사인 삼성물산의 기업가치 상승과 삼성전자의 지배력 강화를 염두한 포석일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삼성물산은 삼성바이오로직스 최대주주로 지분 43%를 보유하고 있다. 인적분할 이후 중간 지주사를 만든 다음 그룹 지배구조를 개편하거나, 삼성물산이 신설회사 지분을 매각해 삼성전자 지분을 확보할 것이라는 등의 시나리오가 언급된다. 최관순 SK증권 연구원은 “삼성물산이 보유한 삼성 계열사 지분 가치만 55조9000억원으로 현재 삼성물산 시가총액(23조6000억원)을 고려하면 현저한 저평가 상태”라며 “이번 인적분할을 계기로 삼성물산의 지분 가치가 부각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그러나 이번 인적분할이 지배구조 개편 목적이 아니라고 밝혔다. 유승호 삼성바이오로직스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이날 온라인 설명회에서 “이번 분할은 그룹의 지배구조 개편과 무관하다”며 “사업적으로 필요했고, 고객 신뢰 확보가 핵심 배경”이라고 말했다.
이날 삼성바이오로직스 주가는 인적분할 소식에 장 초반 8% 급등했다가 전일 대비 1.82% 내린 108만원에 거래를 마쳤다. 삼성물산도 장중 8.63% 오른 15만1000원을 기록했다가 전일 대비 500원(0.36%) 내린 13만8500원에 장을 마감했다.
김성훈 기자 hunh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