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 있는 이들 서로 보듬는 교회, 돌봄 공동체를 이루다

입력 2025-05-26 03:07 수정 2025-05-26 18:01
김종원 대전 은혜의동산교회 목사가 최근 서울 서초구 월간목회 세미나실에서 인터뷰를 마친 뒤 십자가 조형물 앞에서 미소 짓고 있다. 월간목회는 김 목사가 2023년 교회 이야기를 실었던 기독 잡지다. 신석현 포토그래퍼

김종원(45) 대전 은혜의동산교회 목사에게 2019년 12월 1일은 결코 잊을 수 없는 날이다. 이날 김 목사는 부교역자로 시무하던 교회에서 설교 도중 공황 발작을 겪었다. 몸이 굳은 채 말없이 강단에 우두커니 선 목사를 보고 놀란 성도들은 그를 업고 내려와 인근 대학병원으로 데려갔다. 이때 확인한 병명은 ‘급성 공황 발작’. 정신적·육체적 과로로 인한 탈진 증세가 누적된 결과였다.

일주일 쉰 뒤 복귀한 목회 현장에서 두 번째 발작을 맞자 김 목사는 교회에 사직서를 냈다. 졸지에 사역지 잃은 ‘아픈 목사’가 됐지만 그의 삶은 이전과는 확연히 달라졌다. 공황 장애로 “아플 때 비로소 보이는 세상이 있다”는 걸 발견해서다. 김 목사는 이듬해 집에서 은혜의동산교회를 개척하고 자신처럼 몸과 마음이 아픈 성도들과 신앙 여정을 시작했다. 아픈 목사와 ‘아픈 성도’의 만남이다.

현재 60여명이 모여 예배하는 교회는 이웃을 돕는 공동체로 성장했다. 지난해엔 ‘상처 입은 치유자’로 거듭난 자신과 성도들 이야기를 ‘교회가 작다고 사랑이 작진 않아’(세움북스)란 책으로도 출간했다. 김 목사를 최근 서울 서초구의 월간목회 세미나실에서 만났다.

‘회복 안 돼도 괜찮다’는 이유

은혜의동산교회의 핵심 가치는 ‘차별 없는 은혜’와 ‘오름 직한 동산’이다. 천국의 원형인 에덴동산처럼 ‘누구든 차별 없이 하나님 형상이란 그 자체로 사람대접을 받을 수 있는 교회’(갈 3:28)를 꿈꾸고자 제시한 것이다. 교회 구성원 가운데 상황이 어려운 이들이 많았던 것도 이 가치를 형성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

김 목사가 성도들에게 가장 강조하는 말씀은 이것이다.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엡 1:23) 그는 “하나님은 망가진 이 땅에 예수를 보내 십자가 고난과 부활로 세상 회복의 길을 여셨다. 이후 성령을 보내서 이 사명을 교회에 맡겼다”며 “본문은 세상을 완전한 회복에 이르게 하기 전 주님께서 교회를 충만하게 한다는 내용”이라고 설명했다. 이 본문으로 그는 “지금 잠깐 아프고 힘들지라도 하나님이 교회 구성원인 성도를 먼저 충만케 할 것을 믿고 희망을 품자”고 설교했다.

물론 김 목사나 성도들 문제가 일거에 해소된 건 아니다. 그는 “희한하게 다들 교회에 처음 온 그 상태 그대로 산다. 우리끼리 ‘하나님, 참 우리 스타일 아니’라고 말한다”며 웃었다. 말씀으로 변화된 건 상황이 아닌 사람이었다. 김 목사는 ‘하나님이 목사님의 아픔을 크게 쓰실 것’이라고 덕담하는 이들에게 이렇게 답한다. “저 안 쓰셔도, 안 나아도 괜찮아요. 제가 아프니 아픈 이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겠더라고요. 성도들도 더 사랑할 수 있게 됐습니다.” 그는 “성도들 역시 ‘상황은 그대로인데 살아진다’고 말한다”며 “우리의 삶을 바꾼 이 성경 본문이 저는 약속의 말씀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함께라면 망하지 않는다’는 믿음

조울증, 공황장애,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 조현병, 도박 중독…. 이 교회 성도들이 각자 앓고 있는 질환들이다. 김 목사도 처음부터 이런 속사정을 안 건 아니다. ‘전 성도 일대일 양육’을 통해 비로소 이들의 아픔을 알게 됐다. 그는 “다른 교회도 상황은 마찬가지일 거로 생각한다. 겉으로 볼 땐 몰라도 깊이 교제하다 보면 실상 아픈 사람이 참 많다”고 했다.

일대일 양육은 15~30주간 진행하는데, 각자 성경이나 책을 읽어온 뒤 1시간 30분가량 대화하며 삶을 나눈다. 김 목사는 주말을 제외한 모든 시간을 성도와의 일대일 양육에 투자한다. 그는 “3년 동안 1000여일 중 900일을 일대일 양육에 썼다”고 했다. 김 목사가 자신의 목회 스타일을 추어탕 속 미꾸라지처럼 다 갈아 넣는 ‘추어탕 목회’로 소개하는 이유다.

일대일 양육 과정에서 성도의 삶 속 심각한 문제가 드러나면 교회는 구성원 모두가 합심해 돕는다. 남편의 사채 빚으로 전 재산을 잃고 세 자녀와 함께 거리로 나앉은 한 성도의 사례가 그랬다. 이들을 위해 교회는 예배 공간을 주거공간으로 내줬다. 유치원 등 자녀 교육비도 십시일반 해 전달했다. 김 목사는 “개척 1년 후 성도들과 뜻을 모아 3층짜리 다세대주택 3층을 임대했는데 이 성도의 안타까운 소식을 접하고 예배 공간을 내주기로 했다”고 했다. 이어 “8개월간 지내다 지금은 보증금을 구해 자립했다”며 “이때 우리가 느낀 게 있다. ‘교회가 있으면 벼랑 끝에서도 망하진 않겠구나’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일대일 양육 때 저는 ‘나는 메시아가 아니다. 문제는 해결해 줄 수 없지만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함께하겠다’고 말한다”며 “성도들 역시 이렇게 행동한다. 변화는 하나님께 맡기고 같이 아파할 때 하나님의 돌봄을 체험할 수 있다”고 전했다.

올해로 개척 5년 차를 맞는 교회는 앞으로도 ‘힘닿는 대로 하나님 사랑과 은혜를 나누는 공동체 되기’에 힘쓴다. 예배와 교제, 양육·훈련, 구제·선교, 전도 등 교회의 본질적 사역도 이어간다. 그는 “아무쪼록 삶을 마치는 날까지 하나님과 성도 사랑을 1순위로 여기는 목회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