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뮤지션 발굴을 넘어
특별한 흐름 발견하는 기회
韓 대중음악의 내일을 본다
특별한 흐름 발견하는 기회
韓 대중음악의 내일을 본다
같은 일을 짧지 않은 시간 하다 보니 감히 누군가를 심사하는 일을 종종 하게 된다. ‘자세하게 조사하여 등급이나 당락 따위를 결정함’이라는 단어 정의를 보고 자세를 조금 고쳐 앉는다.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종이를 한 장 한 장 넘기며 초조하게 볼펜을 딸각거리는 누군가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런 풍경은 확실히 상상만 해도 조금 주눅이 든다. 심사를 받는 입장보다는 하는 입장에 자주 놓이게 된 지금도 그 쭈뼛한 기분만은 여전히 생생하다. 저승사자나 염라대왕처럼 보이지 않기만을 간절히 바라며 최대한 온화한 표정으로 지원자를 바라보려 노력하지만 노력이 잘 전해지고 있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혹시 심사 공포증이 있는 사람에게 도움이 될까 싶어 말해보자면 실제로 심사는 그렇게 근엄하지도 우아하지도 않은 작업이다. 권위로 똘똘 뭉쳐 세상을 내려보는 듯한 이미지는 미디어가 멋대로 만든 허상일 뿐 실제 심사위원들은 어마어마한 자료와 서류 더미 속에서 허우적대며 시간과 싸우기 일쑤다. 벌써 수년째 함께하고 있는 ‘CJ문화재단’의 ‘튠업’은 1년에 한 번, 총 6팀의 음악가를 선발하는 지원 프로그램이다. 올해도 작년과 흡사한 800여 팀이 응모했다. 2주 남짓의 1차 심사 기간에 지원자가 정리돼 있는 엑셀 파일을 틈만 나면 들락거리며 마르고 닳도록 들었다. 고막과 안구에 달린 나름의 갈퀴로 몇 번을 긁어 솎아낸 뒤 최종 순위를 정해야 할 즈음이 되면 위엄 같은 건 이미 옆집 바둑이에게 준 지 오래다. 결과를 담은 파일을 첨부하고 메일 전송 버튼을 누르는 순간 심사위원 대부분의 상태는 부사 너덜너덜의 인간화 그 자체다.
그렇게 쉽지 않은 심사(審査)안에서 심사(心思)가 보이기 시작한 건 얼마 되지 않은 일이다. 그건 내가 정한 점수로 누군가의 꿈이나 일 년 장사, 사활을 건 프로젝트가 엎어져 버릴 수도 있다는 무시무시한 압박감 안에서 발견한 진주 같은 순간이었다. 사실 음악 분야도 심사가 필요한 수많은 사정이 존재한다. 이제 막 활동을 시작한 신인 음악가를 발굴하거나 새로운 앨범, 공연을 만들기 위해 제작비가 필요한 음악가 및 기획사를 뽑는 지원 사업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최근에는 뮤직비디오나 프로필 이미지, 의상처럼 음악을 더 돋보이게 만들기 위한 기획이나 해외 진출을 위한 다양한 방도를 모색하는 이들도 분야를 막론하고 부쩍 늘었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건 아무래도 재능 넘치는 새로운 음악가들이었다. 최대한 샅샅이 살핀다고 살펴도 좀처럼 쉽게 사정권 안에 들어오지 않았던 음악가들을 고맙게도 이런저런 심사를 통해 만날 수 있었다. 밴드 새소년을 처음 만난 건 EBS의 신인 음악가 발굴 프로그램 ‘올해의 헬로루키’였다. 부산의 젊은 피 보수동쿨러와 해서웨이, 대구의 이내꿈 같은 밴드들은 각 지역 음악창작소에서 비정기적으로 열리는 지원 심사가 아니었다면 한참 후에 만나거나 아예 만나지 못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아찔한 일이다.
새로운 음악가를 발견하는 걸 넘어 특별한 흐름까지 발견하기 시작한 건 비교적 최근 일이다. 이렇게 기나긴 ‘심사 썰’을 풀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심사를 통해 발견한 좋은 기획과 음악가들을 모아 놓으면 해당 신의 그해 흐름이 한눈에 보였다. 같은 해외 진출이라도 북미나 유럽보다 아시아 시장을 원하는 이들이 많아진 밴드신, 멜론의 ‘좋아요’만큼이나 스포티파이 월별 청취자 수가 중요해진 업계 분위기, 팬의 소장 욕구를 자극하는 LP나 테이프 제작이 당연해진 음반계. 심사 속에는 조금 더 뾰족하게 사랑받기 위한 사람들의 부지런한 움직임이 빼곡하다. 올해 심사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막연히 멀다고 생각했던 신과 신 사이의 너무나 자연스러운 교류다. 출신만 아이돌일 뿐 록이나 힙합 같은 제대로 된 장르 음악을 하는 이들과 K팝 가수 못지않은 규모의 해외 투어를 준비하는 싱어송라이터가 혼재한 심사 속에서 한국 대중음악의 내일을 본다. 오늘도 열심히 심사를 한다.
김윤하
대중음악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