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축제의 계절 5월, 학문의 터전인 캠퍼스가 ‘소비의 무대’로 바뀌고 있다. 교정 안팎은 공연과 푸드트럭으로 붐비고, 학생과 외부 관람객이 몰리며 편의점과 인근 상권도 들썩인다. 유통기업들은 현장 이벤트와 팝업스토어 등으로 대학가에 속속 침투하며 브랜드 경험을 확장 중이다. 그러나 축제 열기만큼이나 넘쳐나는 쓰레기와 티켓 암거래 역시 매년 이맘때 되풀이되는 풍경이 됐다.
“편의점·뷰티·주점까지” 소비 시장 흔든다
캠퍼스가 들썩이자 편의점 매출도 뛰었다. 25일 편의점업계에 따르면 서울·경기권 대학 인근 15개 이마트24 점포의 이달 매출은 전월 대비 최대 11배 급증한 것으로 집계됐다. GS25의 대학가 점포 매출도 평균 4배가량 증가했다.
‘의외의 품목’이 매출 상승을 이끌었다. CU와 이마트24에서는 보조배터리 매출이 전월 대비 각각 1324.7%, 1400% 급증하며 신장률 1위를 기록했다. GS25에서는 평소 수요가 적었던 렌즈세정액 매출이 453.7% 증가해 가장 큰 폭의 상승률을 보였다. GS25에서는 렌즈세정액 외에도 클렌징폼, 데오도란트, 칫솔·치약 등 위생용품의 매출이 모두 200% 이상 늘었다. 야외 체류 시간이 길고 활동량이 많아지다 보니 미처 준비하지 못한 일종의 생필품을 편의점에서 구매한 것으로 보인다.
CU와 이마트24에서는 우산, 숙취해소제, 얼음컵·얼음 등 더위와 음주에 대응하는 품목들의 매출도 일제히 올랐다. 세븐일레븐에서는 주류와 간편식이 매출 상승을 견인했다. 와인과 맥주는 무려 40배 이상 판매됐고, 라면·스낵류와 아이스크림 매출도 각각 전월 동기 대비 10배 이상 증가하며 축제 특수를 톡톡히 누렸다.
현장에서도 이 같은 소비 흐름은 확연히 드러난다. 지난 21일 저녁 서울 성북구 고려대 광장에서는 학생들이 음료 상자와 안주 박스를 나르며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인근 편의점은 숙취해소제를 전면에 내세운 1+1 판촉 행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학과 주점에서 일하던 정모(22)씨는 “하루에도 얼음컵, 생수, 탄산음료를 몇 번씩 쓸어오고, 프레첼 같은 스낵은 아예 박스째 주문해둔다”고 말했다.
주변 상권도 모처럼 활기를 되찾았다. 고려대 인근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50대 김모씨는 “바쁘지만 손님이 북적이니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축제와 함께 시작된 여름 페스티벌 시즌에 맞춰 뷰티 소비도 늘었다. 패션 플랫폼 지그재그에 따르면 지난 1~18일 속눈썹 관련 거래액은 전년 대비 2배 증가했다. 일명 ‘아이돌 속눈썹’으로 불리는 가닥 속눈썹은 436%, 입술에 바른 뒤 떼어내 지속성이 긴 립 타투 매출 역시 294% 증가했다.
축제는 유통·식품업계의 마케팅 테스트베드가 되기도 한다. 농심은 오는 30일까지 숭실대, 아주대 등 전국 10개 대학에서 팝업스토어를 운영한다. 신라면존·새우깡존 등에서 게임을 통해 코인을 모으면 제품으로 교환하는 이벤트도 진행한다. 코카콜라의 사이다 브랜드 스프라이트도 신제품 ‘스프라이트 제로 칠(Chill)’ 출시와 함께 홍익대 등에서 샘플링 이벤트를 진행 중이다.
일회용기 넘치는 캠퍼스… 암표 거래도 반복
뜨거운 분위기 속에서도 해결되지 않은 숙제는 여전하다. 일회용품 사용과 폐기물 배출 등 환경 문제는 오랫동안 대학 축제를 비롯한 각종 페스티벌과 야구장 등 야외 행사에서 고질적으로 지적돼 온 사안이다.
환경단체 녹색연합이 지난해 말 대학 축제에 참여했던 1000여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80%가 “축제 쓰레기 문제가 심각하다”고 답했다. 이 중 92%는 축제 중 일회용기를 사용한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고, 다회용기를 사용해본 경험이 있다는 비율은 17%에 불과했다. 응답자의 55%는 분리수거 없이 쓰레기를 버린 적이 있다고 했다. 현장에 분리수거함이 없다는 것도 문제로 지적됐다.
일부 대학은 이를 개선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건국대는 올해 축제 첫날 ‘플로깅’(조깅하며 쓰레기를 줍는 활동) 프로그램을 도입해 캠퍼스를 직접 정화했다. 학생 자치기구가 기획한 이 프로그램은 수거한 플라스틱을 굿즈로 교환해주는 방식으로 자발적 참여를 유도했다.
서울대는 2022년부터 ‘일회용기 없는 축제’를 도입해 2023년 봄 축제에서만 일회용기 8600개의 절감 효과를 봤다. 이화여대도 같은 해 다회용기 사용 시 할인 혜택을 제공하는 친환경 축제를 시도했다. 고려대, 성신여대, 숙명여대 등에서도 다회용기 도입이 이뤄졌다. 제주대도 올해 봄 축제부터 다회용기 사용을 결정했다.
녹색연합 관계자는 “환경부는 2021년부터 다회용기 보급지원 사업을 통해 폐기물 발생량 감축을 추진 중”이라며 “대학 축제 현장에서도 다회용기 사용이 일반화될 수 있도록 정부와 학교 당국의 적극적인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암표 거래도 해마다 반복되는 문제다. 대학 축제 입장 인원이 제한된 데다 인기 아이돌 출연에 외부 수요까지 몰리면서다. 1만5000원 안팎의 티켓이 10배를 훌쩍 넘긴 20만~30만원대에 거래되는 경우도 잦다.
연세대 응원단은 이를 막기 위해 ‘암행어사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단원들이 일반 구매자로 가장해 암표 판매자의 연락처와 계정을 확보한 뒤, 실명 대조를 통해 티켓을 무효화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공기계에 카카오톡 계정을 옮기고, 신분증까지 함께 빌려주는 방식의 우회 거래가 등장하면서 단속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암표 거래는 대학 익명 커뮤니티인 ‘에브리타임’을 비롯해 중고 거래 플랫폼과 X(구 트위터) 등을 통해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있다. 하지만 현행법상 이 같은 개인 간 거래를 제재하기는 어렵다. 경범죄처벌법은 현장 거래에만 적용되고, 공연법 역시 매크로 등 상습적 거래에만 처벌이 가능해 법적 사각지대가 존재한다는 지적이다.
글·사진=이다연 기자 id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