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상 악화로 골프대회가 파행 운영되는 일이 비일비재해졌다. 지난 18일 막을 내린 한국프로골프(KPGA)투어 SK텔레콤 오픈도 그랬다. 당초 이 대회는 4라운드로 우승자를 가릴 예정이었으나 3라운드 54홀 경기로 챔피언이 결정됐다.
대회 마지막 날에 가서야 컷이 결정됐을 만큼 출전 선수를 비롯, 대회 관계자 모두가 힘든 한 주를 보냈다. 연장 승부 끝에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린 엄재웅(34·우성종합건설)도 대회 최종일인 18일 하루에만 총 37홀을 도는 강행군을 펼쳤다.
그런 가운데 유의미한 기록도 있었다. 주인공은 최경주다. 그는 이번 대회를 공동 33위(최종 합계 3언더파 210타)로 마쳤다. 중요한 것은 그가 받아 쥔 성적표가 아니다. 그가 대회 최다인 22번째 컷 통과에 성공했다는 사실이다.
과정은 극적이었다. 17일 1라운드 4번 홀(파5)까지 1타를 줄이며 순항했다. 하지만 5번 홀(파3)에서 최악의 참사를 맛봤다. 두 차례나 연거푸 티샷이 그린 앞 연못에 빠져 4타를 잃는 쿼드러플 보기를 범했다. 그리고 이어진 6번 홀(파4)에서 한 타를 더 잃었다.
복구가 쉽지 않아 보였다. 하지만 최경주는 최경주였다. 그는 남은 12개 홀에서 더 타수를 잃지 않고 3타를 줄여 1오버파로 1라운드를 마쳤다. 그리고 곧장 이어진 2라운드에서 일몰로 경기가 중단된 16번 홀까지 3언더파를 기록했다. 다음 날 속개된 3개홀 잔여 경기에서 모두 파를 잡아 중간합계 2언더파 140타로 기어이 컷을 통과했다. 이번 대회 컷 기준타수는 1언더파 141타였다.
최경주는 지금껏 선수 생활을 하면서 몸 컨디션이 극도로 좋지 않은 경우를 제외하곤 중도에 경기를 포기한 적이 단 한 차례도 없다. 자신의 실수로 스코어가 좋지 않은 경우는 더더욱 그렇다.
최경주는 “이번 대회 5번 홀처럼 경기가 잘 안 풀릴 때가 종종 있다. 물론 화가 난다. 하지만 그 심리 상태가 표정으로 나오면 안된다”라며 “힘들더라도 내 스윙을 믿고 지나간 실수는 빨리 잊는 게 좋다. 요즘 젊은 선수들이 분을 참지 못하고 코스에서 볼썽사나운 행동을 하는 모습을 종종 보는데 결코 도움이 안된다”고 쓴소리를 했다.
모든 결과에 대한 책임을 스스로 지려는 습성이 몸에 밴 것이다. 그의 그런 행동은 동반자는 말할 것도 없고 경기에 출전한 모든 선수에게 선한 영향력을 미친다. 컷 통과에 실패한 1, 2라운드 동반자 박상현은 “경기 몰입도는 말할 것도 없고 관리 여하에 따라 경쟁력은 달라진다는 걸 다시금 확인한 귀중한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최경주는 오는 7월 17일 북아일랜드 포트러쉬의 로얄 포트러쉬 골프클럽에서 개막하는 디오픈에 출전한다. 작년 시니어투어 메이저대회 더 시니어 오픈 챔피언십 우승자 자격이다. PGA투어 통산 499번째 대회 출전이다.
그는 “통산 500번째 출전까지 딱 한 차례만 남았다. 결코 포기할 수 없는 목표다. 지난 4월에 도미니카 공화국에서 열린 PGA투어 코랄레스 푼타카나 챔피언십에 출전 가능성이 큰 대기 1번이어서 가서 기다렸다 헛걸음치고 돌아왔다”라며 “그래도 실망하지 않고 출전 가능성이 큰 대회는 계속 두드릴 생각이다”고 500회 출전을 향한 강한 의지를 내보였다.
최경주는 오는 9월에 경기도 여주 페럼클럽에서 열리는 KPGA투어 현대해상 최경주 인비테이셔널에 출전하기 위해 또다시 국내 골프팬들을 만나게 된다. 4개월 뒤 여정에서 사랑하는 후배들의 성장을 위해 그가 남길 ‘메시지’가 벌써 기다려진다.
정대균 골프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