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압 속에서 신앙 지켜온 일본 기독인 북한 선교에 필요한 진정성·인내 갖춰”

입력 2025-05-23 03:01 수정 2025-05-25 16:39
WGN 이사장 임현수 목사가 21일 일본 나가사키현 사세보의 한 카페에서 일본 복음화와 북한 선교의 연결성을 이야기하고 있다.

400여년 전 일본에 쏟아진 순교자의 피가 21세기 북한 선교의 열쇠가 될 수 있을까. 북한에서 949일간 갇혀 있다 2017년 석방된 임현수(70) 목사는 일본과 북한을 잇는 연결고리를 발견해 새로운 선교 전략을 펼치고 있다.

최근 WGN(World Good News) 이사장으로 취임한 임 목사는 21일 일본 나가사키현 사세보의 한 카페에서 “순교의 역사가 흐르는 일본에서 북한 복음화를 위한 새로운 가능성을 봤다”고 말했다. 1600년대 종교개혁 시기 일본에서는 30만명 이상의 기독교인이 믿음을 지키다 목숨을 잃었다.

현재 북한은 전 세계에서 기독교 박해가 가장 심한 국가로 꼽힌다. 일본은 선진국 중 기독교 인구 비율이 가장 낮은 나라 중 하나다. 그러나 임 목사는 역설적으로 두 나라의 선교가 서로 맞닿아 있다고 봤다.

“일본은 기독교를 많이 핍박했고 그 영향으로 현재까지도 교회는 억압적인 분위기 가운데 있습니다. 북한의 기독교 박해도 비슷합니다. 어느 쪽도 만만치 않지만 하나가 열리면 다른 하나도 열릴 가능성이 큽니다.”

이런 관점에서 임 목사는 일본 교회가 북한 선교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억압 속에서 신앙을 지켜온 일본 기독교인들은 북한 선교에 필요한 진정성과 인내를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메구미 어머니와의 만남
임 목사(앞줄 왼쪽 세 번째)가 2022년 12월 일본 도쿄 한 시민회관에서 출판기념식을 마친 뒤 기념촬영을 하는 모습. 임 목사 제공

그의 일본 선교는 2020년 그의 책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규장)가 일본에서 출간되면서 본격화됐다. 북한에서의 수감 경험을 담은 이 책은 기독서적 부문 1위를 기록했다. 이를 계기로 일본교회로부터 집회 요청이 쇄도했고 임 목사는 일본 각지에서 북한 복음화에 대한 메시지를 전했다.

이 집회를 통해 임 목사는 예상치 못한 이를 만났다. 1977년 북한에 납치된 일본인 소녀 요코타 메구미의 어머니였다. 그는 “크리스천인 메구미의 어머니는 집회에서 저에게 기도를 받고 싶어했고 혹시 딸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까 궁금해했다”고 전했다.

임 목사는 “메구미의 어머니가 신앙으로 상처를 극복하는 모습이 일본 전역에 알려지면서 일본 내 기독교에 대한 인식이 변화하고 있다”며 “그와 지난 3~4년간 가진 세 차례 만남은 일본과 북한 선교의 또 다른 연결 고리가 됐다”고 했다.

일본에는 메구미뿐 아니라 북한에 간 재일 조선인이 9만3000여명이나 있다. 임 목사는 “이런 일들로 인해 일본은 북한에 대한 관심이 높다”며 “이 상황이 일본교회가 할 수 있는 북한 선교 기회라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949일의 수감 후 이어진 탈북 사역

임 목사의 일본과 북한 선교 비전은 자신의 북한 수감 경험에서 비롯됐다. 2015년부터 2년7개월9일의 수감생활 기간 그는 하루 8시간 중노동으로 손가락이 망가졌고 겨울에는 동상으로 발가락 절단 위기까지 경험했다.

그는 석방되기 3개월 전 꿈을 통해 새로운 비전을 받았다. “어둑하고 구름 낀 새벽하늘에서 갑자기 새까만 구름이 두루마리처럼 말려 올라가고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이 나타나는 환상이 보였어요. 이와 함께 ‘통일 대축제 범민족 연합(통대연)’이라는 단어를 받았죠.”

석방 후 임 목사는 통대연을 설립하고 탈북민 사역을 본격적으로 진행했다. 지난해 3000명 규모의 집회를 열었으며 다음 달 21일 경기도 안양 새중앙교회에서 탈북민 전도 축제를 개최할 예정이다. 150여명의 탈북 신학생을 훈련하는 사역도 진행 중이다. 연 2회 수련회와 매주 토요일 저녁 온라인 줌 기도회를 통해 탈북민의 영적 성장을 돕고 있다.

WGN, 복음 콘텐츠 제작에 집중

임 목사는 한일연합선교회 내 방송제작 사역이었던 WGN이 선교회에서 독립한 배경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그는 “한일연합선교회는 그동안 해온 나가사키 순교지 개발을 마무리하고 앞으로는 오사카와 교토의 순교지를 개발할 계획”이라며 “WGN은 일본에 기독교 방송국을 설립해 전 세계 순교 이야기 등 복음적 콘텐츠를 제작하는 데 궁극적 목표를 둔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믿음의 본질을 되찾는 데 ‘순교’만큼 강력한 회복제는 없다”며 “일본의 회심과 북한의 개방이 동시에 일어날 때 아시아의 영적 지형이 변화할 수 있다는 소망을 갖는다”고 전했다.

사세보(일본)=글·사진 김아영 기자 sing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