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예루살렘 동편 감람산 전망대이다. 지난 10일 오전 8시 이스라엘 관광청의 초청으로 한국 대표단과 함께 감람산에서 도보 여행을 시작했다. 예수님 시대엔 올리브나무로 덮여 있었으나 지금은 석조 무덤으로 가득한 언덕 위에서 예루살렘 성을 조망할 수 있다. 그때와 마찬가지로 감람산은 순례자가 예루살렘을 바라보며 걷기 묵상에 나서기에 더없이 좋은 곳이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을 바라보며 눈물 흘리신 곳에는 도미누스 플레비트(Dominus Flevit)로 불리는 눈물교회가 들어서 있다. 눈물 모양을 형상화한 부드러운 곡선의 소박한 예배당 중앙에서 십자가 교차점을 바라본다. 창문을 넘어 예수님 무덤이 있는 골고다 쪽으로 정확하게 시선이 맞춰진다.
눈물교회에서 십분만 걸어 내려가면 겟세마네. 예수님이 마지막으로 고요함을 누리신 곳이다. 제자들에게 깨어 기도해 달라고 당부하시고 지금은 만국교회가 들어선 바위 위에서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기도하셨다. 겟세마네는 ‘기름 짜는 틀’이란 뜻이다. 올리브 기름을 짜는 단지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고뇌하는 예수님, 잠든 제자들과 떨어져 홀로 부르짖으며 고통스럽게 기도하시던 심정을 느껴본다. 겟세마네의 나무들은 유독 밑동이 굵고 굴곡이 많아 보인다. 수령이 오래된 나무들을 바라보며 그날 밤 체포되는 예수님과 도망치던 제자들을 생각해 본다. “칼을 가지는 자는 다 칼로 망하느니라.”(마 26:52) 꾸짖는 예수님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만국교회에서 나와 스데반문을 거쳐 예루살렘 성안으로 들어가면 비아 돌로로사(Via Dolorosa)가 시작된다. ‘고통의 길’이란 뜻의 라틴어,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걷던 고난의 길이다. 아랍인 유대인 아르메니아인 등이 섞여 호객행위가 넘쳐나는 곳이라 묵상에 집중하긴 어렵다. 통곡의 벽 지하터널 입구엔 자동소총으로 무장한 이스라엘 군경이 지키고 있다.
‘원 달러’라고 외치는 상인들의 목소리가 예수님 당대의 ‘호산나’ 외침처럼 들린다. 유대 민족 해방을 위해 혁명을 일으킬 것이라 기대하고 외쳤던 호산나, 하지만 예수님은 권력과 폭력이 아닌 다른 목적으로 이 땅에 오셨다. 인간적인 기대감에서 나온 대중의 열광이 곧바로 탄식으로 바뀔 것을 아셨기에 눈물지었고, 지금처럼 북적거리는 시장통에서 조롱을 받으며 십자가를 끌고 가셨다. 비아 돌로로사는 총 600m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리스도 발자취를 따라 걷다 보면, 그 길이 곧 십자가로 이끄는 길이란 걸 느끼게 된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눅 9:23)
비아 돌로로사의 종착지는 성묘교회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세워진 골고다 언덕, 시신이 내려진 판석, 비어 있는 무덤 등이 모여 있는 곳에 거대한 석조 교회가 들어서 있다. 가톨릭, 그리스 정교회, 시리아 정교회, 이집트 콥트교회, 에티오피아 교회, 아르메니아 정교회 등이 각자 구역을 나눠 산재해 있다. 개별 교회의 다양한 전통을 한눈에 볼 수 있고, 세계에서 찾아온 순례객을 한꺼번에 만날 수 있다.
종점은 마가의 다락방이다. 성묘교회에서 예수님의 비어 있는 무덤을 눈으로 확인한 후 정오를 알리는 예배당 종소리를 들으며 걷다가 2층 다락방에 들어섰다. 예수님이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하셨고, 부활 승천 후에는 오순절에 성령이 강림한 곳. 유대교 회당이었다가 기독교인들의 예배당, 십자군 시대엔 가톨릭 관리 구역이었다가 오스만튀르크 제국 때 재차 모스크로 변한 흔적들이 남아 있다.
예루살렘 관광 당국은 “믿기 위해 봐야 한다(You must see to believe)”면서 사람들을 불러 모은다. 하지만 여러 종교적 상징의 각축을 보면서 예루살렘이 아니라 예수님 그 자체가 참된 성전임을 다시금 깨닫는다.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요 2:19) 무덤은 비었고, 주님은 부활하셨다. 성전은 우리 마음속에 있다.
우성규 종교부장 mainpor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