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생 시대에 아이 출산·양육을 지원하겠다는 약속은 쏟아지지만, 정작 아이를 믿고 맡길 만한 공간을 찾는 건 더 어렵다는 목소리가 크다. 실제 가장 안전해야 할 학교와 학원에서조차 있어선 안 될 사건·사고가 잊을 만하면 일어난다. 이렇듯 믿기 힘든 사회 안에서 안전지대 역할을 감당하는 교회들이 있다. 세상과는 다른 헌신과 사랑으로 따뜻한 울타리를 치고 아이들이 맘 편히 지낼 수 있는 공간이 되어주는 곳들이다. 이들은 교회가 지역 사회의 아이들을 안전하게 돌보는 것은 교회의 존재 이유라고 강조한다.
친구와 함께 놀 공간이 된 교회
“두 달 전 이사 왔는데 집 앞 교회에서 친구들이 노는 게 자주 보여서 가보고 싶었어요. 특히 엄마 아빠가 바쁘셔서 집에 안 계실 때요.”
토요일인 지난 17일 전북 전주의 온고을송천교회에서 만난 장재이(10)양에게 교회는 꼭 한번 가보고 싶은 곳이었다. 초등학교 4학년부터 친구 따라 이 교회에 나온 김태윤(16)군도 마찬가지다. 축구를 맘껏 할 수 있고 이곳 선생님에게 고민도 털어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저 따라 여동생 두 명도 교회에 온다”고 했다.
정명환 정성일 문영환 박준성 채준석 등 목회자 5명이 함께 일구는 이 교회는 동네 아이들이 함께 모이는 놀이 공간으로 자리매김했다.
2017년 설립된 교회 체육관에서 매주 토요일마다 열리는 축구 농구 교실이 대표적인 프로그램이다. 사춘기 여학생을 위한 ‘헬프(HELP·Happy Eat Learn Play) 교실’, 초등생 레크레이션 활동인 ‘굿즈 모임’도 활발하게 운영된다. 교회에 어린이 키높이에 맞춰 낮게 설치한 화장실 세면대와 변기도 있다.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과 먹거리 준비 등에 적극적인 성도들이 있기에 가능하다. 2013년 축구교실을 처음 시작한 김병인 집사는 “매주 토요일 서너 명 학생 성도와 함께 축구하며 놀았는데, 그 아이들이 다른 친구를 데려오며 모임이 커졌다”고 했다. 헬프교실에서 4년째 봉사하는 유정훈 성도는 “폰케이스 꾸미기나 유행하는 젤리 먹기, 네일 아트, 배구 등 아이들 취향에 맞춘 다양한 활동을 진행한다”고 했다.
교회는 캠핑장도 따로 마련해 지역민들이 아이들과 쓸 수 있도록 빌려주고 있다. 정성일 목사는 “부모의 마음으로 아이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흘려보내니 아이들이 교회로 모였다”고 했다. 자연스레 교회가 젊어졌다. 교회 출석 교인 450명 중 250명이 20대 이하다. 더구나 이들 중 절반가량이 부모 손에 이끌려서가 아니라 스스로 교회에 나오는 아이들이라는 점도 이 교회의 특별함이다.
학원 전 PC방 대신 교회 온 아이들
서울의 대표적인 사교육 밀집 지역인 양천구 목동의 예수다솜교회(박두진 목사)는 매주 수, 금요일엔 하교 후 학원에 가는 아이들이 잠시 머물다 가는 쉼터가 된다. 교회 인근 초등학교 2곳과 중학교 1곳 학생들이 단골손님이다.
박두진 목사는 지난해부터 하굣길 아이들에게 다가가 음료수를 나눠주고 “학원 가기 전 시간이 뜨면 교회에 와서 쉬다 가라”고 얘기했다. 아이들은 교회 식당 한편에 마련된 라면과 맥반석 달걀을 먹으며 잠시 머물다 가기 시작했다. 지난해 50여명이 교회 문을 두드렸고 올해도 새 학기가 시작된 지난 3월부터 10여명의 초등생이 꾸준히 교회에 들르고 있다.
최근 교회에서 만난 박 목사는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환대의 마음을 따라 우리 공동체도 아이들을 따뜻하게 품으려 한 것”이라며 “교회 예산이 아닌 이 사역을 위해 성도들이 자발적으로 헌금해 마련했다”고 말했다.
교회는 아이들이 좀 더 편하게 머물 수 있도록 식당 외 교회 공간 전체를 개방했다. 휴대전화만 쳐다보던 아이들은 이제 피아노를 치고 드럼도 두드린다.
지난해 11월엔 교회 쉼터를 찾는 아이들을 초대해 인근 공원에서 3대3 농구대회를 열기도 했다. 교회는 참가 학생 60명의 보험을 들어줬고 간식도 준비했다. 우승팀엔 상금 20만원도 줬다.
출석 교인이 100여명 정도인 작은교회에서 간식비나 관리비 등을 부담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박 목사는 “저 역시 아무 조건 없이 예수님의 사랑을 받았기에 아이들이 이 공간에서 따뜻함을 느낀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박 목사 목양실을 둘러보면서 “책이 왜 이렇게 많으냐” “선생님이 여기 사장이냐”고 묻던 아이들이 다른 지역의 외고나 과학고 등으로 진학해 동네를 떠났다가 가끔 교회로 찾아오기도 한다. 박 목사는 “교회 문을 열고 들어와 피아노를 치고 노래를 불렀던 이 공간이 아이들에게 따뜻한 기억으로 남았으면 좋겠다”고 웃었다.
길거리 방황 대신 교회서 쉴 수 있게
강원도 원주의 헤이스교회(최민수 목사)는 개척 2년 차인 2021년부터 24세 이하 청년과 청소년, 암 환자 등 운동이 필요한 이웃에게 퍼스널트레이닝(PT)을 제공해 왔다. ‘리헬스’라는 운동복지 사역이다. 최민수 목사는 이를 위해 스포츠의학석사 과정도 밟았다. 예배가 없는 평일 낮 1층 예배당은 동네 헬스장이자 청소년들의 아지트로 바뀐다. 하루 평균 대여섯 명이 이곳에 들러 게임을 하거나 간식을 먹고 간다. 이렇게 운동 등을 이유로 이 교회 문턱을 넘은 아이들은 600명에 달한다.
최 목사는 지역의 청소년기관을 통해 소개받은 아이들에게 일대일로 운동을 가르치고 있다. 규칙적으로 PT 받는 청소년이 10명 수준이다. 깨진 가정이나 위탁가정에서 지내는 아이들이 대다수인데, 한번 인연을 맺으면 최소 3개월간 꾸준히 만난다. 최 목사는 최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어른을 믿지 않는 아이들의 마음을 만져주는 것은 물론 언제든 편하게 교회에 들를 수 있도록 공간을 열어두고 있다”고 했다. 편안하게 쉴만한 복층 구조의 2층은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공간이다. “아이들이 길거리에서 방황하지 않고 부담 없이 교회에 왔으면 했다”며 “작은 교회이지만 성도들의 섬김으로 만든 공간에서 아이들이 안정감을 느끼며 지내는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의 일하심을 본다. 아이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조금이라도 느끼면 좋겠다”고 했다.
맞벌이 아이들 품는 ‘영어도서관’
서울 관악구의 은천제일교회(오후석 목사) 1층엔 평일 오후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 다녀온 아이들이 책을 읽거나 놀 수 있는 영어도서관이 있다.
영어도서관 선교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교육 회사 ‘자이언트리딩’(김기영 대표)이 관악구와 함께 조성한 공간이다. 김기영 대표는 “맞벌이 부모가 많은 지역 특성상 방과 후 아이들을 믿고 맡길 수 있는 공간에 대한 수요가 컸다”며 “부모들에게 ‘안심하고 아이를 맡길 수 있는 곳’이라는 인식을 심어주고 있다”고 강조했다.
지난달 개관한 이 도서관에 첫 번째로 등록한 아이는 7세 남자아이다. 대면 상담 시간을 잡기 어려울 정도로 아이의 맞벌이 부모는 바빴다. 그와 비슷한 가정의 아이들이 방과 후 영어도서관에 오면 교회가 부모의 빈자리를 채운다.
경기도 용인의 올리브교회(조준환 목사)에도 비슷한 영어도서관이 있다. 이 교회 장로인 김 대표가 재정이 넉넉하지 않은 선교사와 사정이 어려운 이웃 등 사교육 사각지대의 아이들을 위해 지난해 4월 교회 내에서 시작한 영어도서관 프로그램이다. 입소문이 나면서 지역 내 많은 부모가 아이들을 보내기 시작했다. 이를 통해 교회에 나오고, 이젠 서리 집사가 된 부모도 있다.
도서관 설립과 교육부 지원에는 성도들이 모은 특별헌금이 쓰였다. 김 대표는 벽면 페인트칠부터 가구 조립에까지 손을 보탰다. 그는 “이 공간을 통해 아이들은 안전한 품을 느끼고, 부모들은 자연스레 교회에 마음을 열었으면 한다”고 했다.
신은정 박효진 김수연 기자 전주=조승현 기자 se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