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대부분의 자치단체들이 인구절벽 문제를 고민하고 있는 가운데 경북 봉화군이 추진하고 있는 인구증가 프로젝트 ‘K-베트남 밸리 조성사업’이 주목 받고 있다. K-베트남 밸리 조성사업은 국내 유일 베트남 리 왕조 유적지 개발을 통해 국내외 관광객 유치, 한-베트남 양국 간 우호 증진은 물론, 다문화인들 유입 및 교류공간으로 활용하기 위한 사업이다.
베트남 리 왕조를 기리는 충효당이 자리 잡고 있는 봉화군 봉성면 일대에 베트남 역사공원과 베트남 길, 베트남 마을 조성을 추진 중이다. 이 사업은 다른 지자체들과는 차별화된 인구유입 정책으로 중앙정부 및 베트남에서도 큰 관심을 갖고 있다. 이에 국민일보는 25일 박현국 봉화군수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K-베트남 밸리 조성사업은 타 지자체와 확연히 차별화된 정책이다. 그 중심에 있는 베트남 리 왕조는 무엇인가.
“베트남 리 왕조는 중국의 속국에서 벗어난 최초 장기 독립 왕조이다. 따라서 베트남 사람들에게 리 왕조 위상은 독보적이다. 리 왕조 6대 황제 영종의 아들 이용상(1174~? 화산 이씨 시조)은 중국계 진씨 왕족이 쿠데타를 일으키자 탈출해 1226년 고려 옹진 화산에 정착했다. 그의 후손들이 거주하고 있는 봉화군 봉성면에는 이용상의 13세손(리 왕조를 세운 이공온의 20세손) 이장발(李長發·1574~1592)의 충효를 기리는 충효당(문화재자료 제466호)이 있다. 이장발은 임진왜란이 발생하자 19세 어린 나이로 편모슬하 가장이면서도 모친의 허락을 받고 전장으로 달려가 문경새재에서 혈전 끝에 전사했다. 이 같은 역사적 사실을 볼 때 리 왕조 후손이 800여 년간 봉화에 살면서 많은 문화적 흔적을 남겼다. 국내 거주하고 있는 베트남 이주민은 25만여명, 우리나라를 찾는 한 해 베트남 관광객은 40만여명으로 추산된다. 이 사업을 통해 베트남 이주민은 물론 유학생과 다문화가족들, 베트남 여행객들을 봉화로 유치하려한다.”
-K-베트남 밸리 조성사업의 핵심은 무엇인가.
“봉화는 베트남 리 왕조 후손의 유적(충효당, 유허비, 재실 등)이 국내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곳이다. 직계 종손 및 후손들도 거주하고 있다. 이 역사적 연원을 바탕으로 한-베 양국을 잇는 인적, 물적 네트워크 거점이 될 수 있는 베트남 다문화인들의 요람으로 조성하려는 것이다. 특히 가속화 되고 있는 봉화군의 지방소멸 위기를 다문화국제학교, 진로연계센터, 관광 등으로 생활인구 증대를 통해 극복하기 위한 핵심 사업이다. 주요 시설로 베트남 리 왕조 유적지 조성, 한-베 역사문화콘텐츠 센터, 연수·숙박시설, 다문화국제학교, 진로연계센터 등을 조성할 계획이다.”
-K-베트남 밸리 조성사업의 소요 비용과 시간은 어떻게 되나.
“사업비는 총 2000억원 정도다. 국비 1000억원, 도비 210억원, 군비 490억원, 민자 300억원이다. 사업기간은 2033년까지 10여년이 걸린다. 해당 부지는 11만8890㎡ 규모다. 이 사업은 행정안전부, 문화체육관광부, 교육부, 경상북도 등에서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 사업이기도 하다. 따라서 예산 확보는 어렵지 않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 사업에 대한 베트남 현지 반응은 어떤가.
“충효당 사람들이 살던 마을을 둘레로 해서 조금씩 변화가 있다. 베트남 교육부 장관으로 거론되던 교수 한 분도 몇 년 전 봉화로 이사를 왔다. 이들은 리 왕조에 대한 자긍심과 자부심이 높다. 문체부에서는 봉화에 정착한 리 왕조 후손들의 800년 세월을 드라마 또는 영화, 젊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웹툰 등으로 제작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이를 한류 바람이 불고 있는 베트남에 뿌리면 큰 효과가 기대된다. 베트남의 한-베 의원 연맹은 물론 베트남에 나와 있는 삼성그룹도 사업 추진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조만간 베트남 정부와도 투자 관련 협의를 진행시킬 계획이다.”
-사업이 성공하면 모범적인 정책으로 남을 것 같은데.
“이 사업은 단순히 베트남 5대 명승 조형물 몇 개를 설치한 후 관광객이나 이주민을 유치하려는 사업이 아니다. 인구유입은 물론 정부에서도 염두에 두고 있는 생활인구 증가 효과까지 거두려면 한국 거주 베트남 사람들의 생활 중심지가 될 수 있도록 추진해야 한다. 이주민들이 정착할 수 있도록 주거지와 일자리도 만들어야 하고 교육 문제 등도 세심하게 배려해야 한다. 최소 10년은 걸려야 정착 인구가 늘 것이다. 이 사업은 인구 증가 정책의 국제적인 모델이 될 것으로 확신한다.”
-사업이 가지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면.
“K-베트남 밸리 조성 사업은 단순한 개발이 아닌, 소멸하는 지방을 되살리기 위한 절박한 생존전략이다. 인구절벽과 공동화라는 시대적 위기 앞에서 이 프로젝트에 ‘정주(定住)’라는 희망을 걸었다. 처음엔 관광 위주의 사업이었지만, 철학과 방향성을 송두리째 바꿨다. ‘체류’ 대신 ‘정착’, ‘방문’ 대신 ‘삶’을 선택했다. 봉화가 맞닥뜨린 지방소멸 위기를 해결할 열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 사업은 이제 지방 차원의 프로젝트를 넘어 국가적 관심과 외교·문화의 거점으로 자리 잡고 있다. 창평리는 단순한 역사 유적지가 아니라 살아 숨 쉬는 ‘한국 속의 베트남’으로 변모할 준비를 하고 있다.”
봉화=김재산 기자 jskimkb@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