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시론] 메시아 뽑는 선거 아닙니다

입력 2025-05-23 00:32

역대 대통령 지지율 통계를 보면 뚜렷한 공통점이 있다. 집권 초기는 높은 지지율로 시작하지만 마지막 분기에는 최저점을 찍는다는 것이다. 새로운 대통령에 대한 기대는 시간이 지나며 실망으로 바뀐다. 이런 희망과 실망이 여러 차례 반복돼도 매번 대선 직후엔 다시 높은 지지율을 보인다. 우리는 늘 메시아를 기다리듯 대통령을 뽑는다. 구악과 적폐를 쓸어버리고 새로운 시대, 새로운 나라를 여는 구세주 말이다.

이런 반복되는 기대와 실망의 배경에는 대통령에게 과도하게 부여된 역할과 권한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대통령은 단순한 행정부의 수장이 아니다. 입법을 주도하는 정당의 수장이자 사법부를 구성하는 대법관과 헌법재판관 추천권자다. 외교와 안보, 경제와 기후, 민생과 안전까지 책임지는 존재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대통령은 국가의 얼굴이며 국민의 자부심을 대변하는 존재로 여겨진다. 기념일에 의미를 부여하고, 외국 정상을 맞이하며, 참사 현장에서는 눈물을 닦아주는 사람이다. 대통령은 부성과 모성을 동시에 구현해야 하는, 일종의 성육신적 상징으로 작동한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 시작된다. 대통령을 메시아로 생각하고 그에게 거의 종교적 충성을 바치는 현상은, 역설적으로 그리고 불행하게도, 지금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분열과 대립의 가장 중요한 원인이다. 각 진영은 자신들의 희망 혹은 욕망을 실현해줄 ‘참 메시아’를 찾아내고, 그 외의 인물은 ‘가짜 메시아’로 낙인찍는다. 한쪽은 구세주요, 다른 쪽은 적폐다. 정치적 승부는 결국 상대 진영을 악마화함으로써 내부 결속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치닫는다. 상대는 무능하고 타락한 자, 나아가 제거돼야 할 존재로 묘사된다.

우리 시대 분노한 대중은 이 프레임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코로나 이후 삶이 팍팍해진 이들은 정치적 상대에게 분노를 쏟아내고, 유튜브와 SNS는 이를 가속화한다. 닫힌 알고리즘과 확증편향은 진영 밖의 정보는 차단하고, 뻔한 내로남불조차 정당화한다. 공론장은 왜곡되고 통합 대신 증오가, 화합 대신 분열이 쌓인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메시아 담론에 가장 취약한 이는 대통령 자신이다. 누구보다 자신의 한계와 부족을 잘 알지만 참모의 아첨과 지지자의 환호는 그를 착각하게 만든다. 자신이 진짜 메시아라고 믿는 순간 대통령은 통합의 걸림돌이 된다. 통합을 외치지만 그것은 자신을 정점으로 하는 일사불란한 통합이며, 불편한 소리를 제거하는 방식의 통제된 평화일 뿐이다. 결과는 늘 똑같다. 기대는 실망으로, 권력은 복수로 이어지고, 전직 대통령의 감옥행은 하나의 전통처럼 반복된다.

기독교인은 이 정치적 악순환에서 벗어나야 한다. 대통령은 단지 정치의 영역에서 봉사하는 지도자이지 결코 메시아가 아니다. 메시아는 고사하고 우리와 마찬가지로 무지와 욕망으로 가득한 길 잃은 죄인일 뿐이다. 물론 성경은 권위에 순종하고, 정의를 실행하는 자를 존경하라고 가르친다. 그래서 우리는 선거를 앞두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공동선을 위해 성실히 투표해야 한다.

그러나 거기까지다. 한 사람에게 너무 많은 기대를 걸어선 안 된다. 한 대통령이 임기 내에 이루는 평화와 번영은 제한적인 것이고, 설사 이뤘다 해도 우리 영혼에 ‘참 만족’을 주진 못한다. 내가 지지한 후보가 당선됐다면 그가 자만하지 않고 하나님 뜻을 이루는 대통령이 되도록 기도해야 한다. 낙선했다면 그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지도자임을 인정하자. 무슨 일이 있어도 정치적 견해 차이가 교회를 분열시키는 일은 없어야 한다.

“성경에 증언된 예수 그리스도는, 사나 죽으나 신뢰하고 복종하며 늘 귀 기울여야 할 하나님의 유일한 말씀이다.”(바르멘 신학선언)

장동민 백석대 기독교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