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외교책사, 대선 앞서 ‘삿초동맹’식 한·일 협력 강조
고령화 직격탄에 양국 위기 손잡지 않으면 국가 생존 위협
대선용 구호, 진영 전략 아닌 경제공동체 목표로 나아가야
고령화 직격탄에 양국 위기 손잡지 않으면 국가 생존 위협
대선용 구호, 진영 전략 아닌 경제공동체 목표로 나아가야
“한국과 일본은 일본의 조슈번(현 야마구치현)과 사쓰마번(가고시마현)이 손잡은 수준으로 협력할 필요가 있다.” 발언 주인공은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의 외교 책사라 불리는 김현종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 1866년 앙숙이던 조슈번과 사쓰마번이 에도 막부 타도를 위해 맺었고 후일 근대 일본의 시작인 메이지 유신 시대를 연 ‘삿초동맹’을 한·일이 나아갈 길로 언급했다. 지난 8일(현지시간)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당국자들과 회동한 뒤 한·미·일 협력 중요성을 강조하며 한 말이다.
대선 전에 특정 정당 후보 측이 미 정부 고위 인사들을 만난 것도, 각종 선거에서 반일 장사로 재미를 본 민주당 진영에서 이런 얘기가 나온 것도 이례적이다. 그만큼 민주당이 집권을 자신하며 이 후보의 아킬레스건 격인 ‘불안정한 외교관’ 불식에 나선 셈이다.
김 전 차장은 노무현정부에서 통상교섭본부장을 맡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했고 문재인정부서도 중용됐다. 강단 있는 스타일에 미국통인 그가 일본을 보는 시각은 묘하다. 2019년 7월 일본의 수출 규제로 시끄러울 때다. 김 차장은 외신 기자단에 지금의 삿초동맹론을 설파했다. 심지어 정한론(한국 정복론)의 시조이자 삿초동맹의 발판을 마련한 요시다 쇼인까지 거론하며 “그가 살아 있다면 한·일 간 미래지향적 협력에 대한 내 평가에 동의할 것”이라고도 했다. 청와대에서 ‘죽창가’가 난무하던 시기에 그의 말은 화제가 됐다.
그런데 이후 일본이 화이트리스트(우호국가)에서 한국을 제외하자 표변했다. 그는 “아베 신조 총리 이름의 ‘신(晋)’자는 (삿초동맹 주역) 신사쿠 다카스키와 같은 한자를 사용한다. 그들이 주장한 게 정한론”이라며 전의를 다졌다. 2006년 통상교섭본부장 시절 한·일 FTA가 ‘제2의 한·일 경제병합’이 될 것이라고 반대하며 노무현 대통령에게 이렇게 보고했다. “일본의 FTA 정책은 요시다 쇼인의 조선 침략론과 무관하지 않다.”(‘김현종, 한미 FTA를 말하다’)
삿초동맹과 관련 인물들을 ‘대일 유화론’과 ‘반일’이라는 극과 극 주장의 근거로 동시에 활용한다. 이런 스탠스에 외교가에선 삿초동맹은 립서비스이고 반일이 그의 본심이라 여긴다. 대선 과정에서 “감사하므니다”와 “일본에 애정이 많다”라 말해도 과거 언행들로 인해 반일 이미지에 갇힌 이 후보와 비슷하다고나 할까.
중요한 건 대선용 립서비스, 민주당 집권 여부를 떠나 그가 쏘아올린 삿초동맹식 연합이 더는 구두선에 머물러선 안 될 시점이라는 점이다. 국교정상화 60주년 얘기가 아니다. 양국은 저출생·고령화에 따른 내수 부진의 동병상련을 겪고 있다. 노동인력 감소로 국내총생산(GDP) 세계 4위 일본은 2050년 6위, 2075년 12위로 떨어진다. 한국은 현재 12위권에서 2050년 이후 아예 규정 순위권 밖으로 밀려난다(골드만삭스). 한국 내수 소비 성장률은 1996년 정점(9.1%)을 찍은 뒤 30년째 내리막길을 걸으며 현재 1.2%에 그치고 있다.
미국 보호주의 기조에 최대 타격을 받는 무역국이 한·일이다. 양국에 미·중의 인공지능(AI) 대전에 맞설 혁신 기업들도 눈에 띄지 않는다. 자유민주주의의 공통 가치에 최인접 국가인데 내수 규모도 작고 성장 동력 찾기도 어렵다. 손을 잡는 것 말고는 답이 없다. 첨단기술 연구개발도, 안정적 공급망 구축도 양국 협력 하에 가능하다.
우연인지 몰라도 김 전 차장이 삿초동맹을 언급한 날, 최태원 SK 회장은 이 후보도 참석한 경제5단체 간담회에서 한국의 새 성장 모델로 한·일 경제연대를 내세웠다. 트럼프발 관세전쟁 대응을 넘어 궁극적으로 유럽연합(EU)식 경제공동체로 키우자는 구상이다. 양국의 GDP를 합치면 6조~7조 달러에 이를 수 있고 여기서 1% 성장은 한국의 2~3% 성장보다 크다.
민족 감정과 일본의 잇단 도발, 역사 왜곡의 현실은 항상 부담이다. 하지만 지금보다 반일 감정이 심했던 사반세기 전 ‘김대중-오부치 선언’과 일본문화 개방으로 한·일 관계의 도약을 이뤄낸 바 있다. 양국 관계가 풍랑 없이 순탄하기만 한 적이 있었던가. 김 전 차장의 책에 이런 글귀가 있다. “Impossible(불가능한)은 I’m possible(가능하다)의 다른 표현에 불과할 뿐이다.” 한·일 협력의 새로운 장을 열기 위한 마음가짐으로 새겨야 한다.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다.
고세욱 논설위원 swk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