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공연예술의 역사에서 1960년대는 뮤지컬이 처음 공연된 시기라는 점에서 중요하다. 당시 미국 뮤지컬의 번역 공연을 통한 뮤지컬 장르의 수용과 창작 뮤지컬을 통한 뮤지컬 토착화의 흐름이 동시에 나타난다. 서울시뮤지컬단이 1960년대 한국 최초의 뮤지컬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상상력과 유머로 풀어낸 ‘더 퍼스트 그레잇 쇼’(포스터)를 오는 29일부터 6월 15일까지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선보인다.
한국 첫 번역 뮤지컬은 미국 연수를 마치고 돌아온 연출가 유치진이 1962년 드라마센터 개관 기념으로 올린 ‘포기와 베스’다. 다만 뮤지컬 넘버를 일부만 부르고 춤을 줄이는 등 미흡한 부분이 많았다. 이후 유치진의 딸 유인형이 미국 유학 중이던 1966년 연출한 ‘포기와 베스’ 재공연이 본격적인 뮤지컬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비해 창작 뮤지컬은 1961년 5.16 군사정변 직후 중앙정보부장 김종필이 북한 피바다 가무단에 필적하기 위해 만든 예그린 악단에서 만들어졌다. 다만 예그린 악단이 1962년 처음 올린 ‘삼청만의 향연’은 다양한 장르의 노래를 연주, 춤과 곁들인 버라이어티 쇼였다. 이후 김종필의 중앙정보부장 사직과 함께 1963년 해산됐다가 1966년 재창단한 예그린 악단이 한국적 뮤지컬의 토착화를 방향으로 내세웠다.
재창단한 예그린 악단이 선보인 첫 작품이 바로 1966년 한국 최초의 창작 뮤지컬 ‘살짜기 옵서예’다. 제주 방언인 제목은 표준어로 ‘살금살금 다가오세요’라는 뜻이다. 고전소설 ‘배비장전’의 원작으로 한 ‘살짜기 옵서예’는 김영수 극본, 최창권 작곡, 임영웅 연출, 임성남 안무로 만들어졌다. 그리고 인기 가수 패티김이 기생 애랑 역을, 스타 코미디언 곽규석이 배비장 역을 맡았다. 당시 제작비 300만원, 출연진 300명이라는 전무후무한 규모로 제작된 ‘살짜기 옵서예’는 나흘 7회 공연에 1만6000여 명이 관람할 정도로 흥행했다. 또 패티김이 부른 뮤지컬 넘버 ‘살짜기 옵서예’는 국민가요로 사랑받았다.
서울시뮤지컬단의 창작 뮤지컬 ‘더 퍼스트 그레잇 쇼’는 예그린 악단의 ‘살짜기 옵서예’ 제작 당시 에피소드를 모티브로 한 가상의 이야기다. 김동연 연출, 송희진 공동연출 및 안무, 박해림 극작, 최종윤 작곡 등 뮤지컬계의 핫한 창작진이 참여했다. 북한 공연을 뛰어넘는 대작을 만들어야 하는 중앙정보부 문화예술혁명분과 유덕한 실장과 그의 실수로 연출자가 된 배우 지망생 김영웅이 좌충우돌하는 것이 이야기의 핵심이다. 여기에 상부의 지시와 검열로 대본은 끊임없이 수정되고, 배우들은 방향을 잃고 즉흥 연기를 펼치는 것이 웃음을 준다. 또 뮤지컬 팬들에겐 이번 작품의 넘버에 모티브로 활용된 유명한 뮤지컬 넘버 100여 곡을 찾는 것도 재미의 요소다. 서울시뮤지컬단 단원들과 함께 뮤지컬 배우 이창용, 조형균이 객원으로 나온다.
서울시뮤지컬단이 2023년 창작 개발에 돌입해 3년째 되는 올해 무대에 올리는 이 작품은 메타뮤지컬(meta-musical)이다. 즉, 뮤지컬에 대한 뮤지컬로 서울시뮤지컬단의 뿌리와도 관련이 있다. 예그린 악단이 이후 국립가무단을 거쳐 1977년 서울시립가무단(서울시뮤지컬단의 전신)이 됐기 때문이다. 김덕희 서울시뮤지컬단 단장은 “2000년대 이후 한국에서 뮤지컬의 급성장 배경에는 1960~70년대 선배님들의 많은 실패와 고난이 있었기 때문”이라면서 “당시 뮤지컬이 무엇인지조차 잘 몰랐던 시절 선배님들이 겪었던 여러 해프닝을 모티브로 삼는 한편 최선을 다하신 선배님들에 대한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담아 이번 작품을 만들었다”고 밝혔다.
장지영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