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바늘 한 땀, 이야기 한 땀

입력 2025-05-23 00:31

가구라자카 골목을 걸어가다가 작은 입간판을 보았다. 오비(帯) 전시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오비란 기모노나 유카타에 조여 매는 넓은 허리띠를 말한다. 전시장으로 들어가 보았다. 은사를 섞었는지 자수에 광택이 돌았다. 학, 연꽃, 잉어 등을 도톰하게 수놓아 입체적으로 보였다. 약 2m가 넘는 오비를 길게 늘어뜨린 것을 보니, 한 폭의 동양화를 보는 듯했다. 여백을 자수로 촘촘하게 채우지 않고, 중앙에 딱 하나만 수놓은 자수가 더욱 돋보였다.

동시에 엄마가 차렵이불에 홑청을 덧대어 꿰매던 날의 기억도 떠올랐다. 한참 이불 모서리를 접어 시침질하던 엄마가 나를 불렀다. “땀을 좀 넓게 해서 윗단과 아랫단을 꿰매 놓아라.” 딸의 솜씨를 가볍게 떠보는 듯한 말투였다. 엄마가 마실 간 사이, 나는 방바닥에 이불을 넓게 펼쳐놓고 한 땀 한 땀 이불을 시쳐 나갔다. 바느질을 솜씨 있게 해내고 싶었다. 일정한 간격으로 반듯하게. 그런데 끝까지 꿰매고 나서 보니, 바느질선이 삐뚤빼뚤했다. 게다가 손가락에 힘을 너무 줬는지, 아예 한쪽 단이 쪼글쪼글 울어 버렸다. 귀찮아서 시침핀을 꽂지 않고 꿰맨 탓이었다. 마실 나갔다가 돌아온 엄마는 나의 엉성한 솜씨를 보고는 헛웃음을 지었다. 그러고는 별다른 타박 없이 다시 실을 풀어 시침질을 해나갔다.

원앙 한 쌍과 목숨 수(壽)자를 수놓은 베개, 손때가 반질반질한 모란 자수 바늘꽂이. 이 물건들은 젊은 날의 어머니가 내게 물려준 문화유산이나 다름없다. 바늘귀에 실을 끼울 때마다 미간 주름이 내 천(川)자처럼 가늘게 잡히던 엄마. 바늘이 홑청 속으로 드나들 때, 고요한 몰입의 순간이 동그랗게 맺히던 방. 그때의 기억이 잠잠하고 평화로웠다.

나라마다 자수를 놓는 미의식과 기법은 다르지만, 비단실 한 올에 깃든 복된 마음과 수를 놓으며 계절을 음미하는 마음은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집으로 가는 길, 비췻빛 도는 하늘이 높다.

신미나 시인 겸 웹툰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