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유명 애니메이션 ‘이집트 왕자’의 백미는 ‘홍해의 기적’ 장면이다. 구약성경 출애굽기는 이집트의 왕자였다가 하나님의 뜻에 따라 민족 지도자로 추대된 모세가 바다 위로 손을 내밀자 밤새 큰 동풍이 몰려와 바다에 마른 땅이 드러났다고 기록한다.(출 14:21~30)
이 홍해의 기적에 대한 의견은 기독교인 사이에서도 분분한 편이다. 고대 근동 역사가이자 고고학자로 현재 연세대 한국기독교문화연구소 연구교수인 저자는 이 기적이 역사적 사실일 가능성을 제시한다. 연세대 신학과와 같은 대학 연합신학대학원을 거쳐 이스라엘 히브리대와 텔아비브대서 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고대 근동·레반트(Levant) 고고학 전문가’다. 레반트는 서아시아의 동지중해 연안 지역을 뜻하는 용어로 오늘날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시리아 레바논 등을 이른다.
책은 저자가 그간 이스라엘 예루살렘 다윗성과 라기스, 기럇여아림 등 발굴 현장에서 마주한 고대 역사와 성경 이야기를 알기 쉽게 풀어낸 것이다.
홍해의 기적은 그 대표적 사례다. 고대 이집트 문서인 ‘이푸베르 파피루스’엔 이집트인 관점에서 본 홍해의 기적이 기록됐다. 네덜란드 라이덴의 국립고고학박물관에 소장된 이 문서엔 이집트 전역을 휩쓴 자연재해와 이로 인한 사회 혼란이 기록돼 있다. 학계는 해당 문서를 기원전 19세기에 작성돼 기원전 13세기까지 수정·편집된 것으로 보는데 이는 성경 속 출애굽 시기와 겹친다는 게 저자의 해설이다. 또 이집트를 떠나려는 노예의 목에 온갖 보석을 걸어줬다는 진술과 불기둥을 연상케 하는 자연 현상도 기록됐다.
이집트 카르나크 신전 세 번째 탑문 좌측 벽에 새겨진 세티 1세 전투 장면과 람세스 4세 무덤에 있는 ‘문들의 서(書)’에는 물이 두 갈래로 갈라진 내용이 새겨져 있다. 전자에는 전차를 모는 이집트인 앞에 쫓기는 세 무리와 큰 물줄기, 그 건너편에서 찬양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저자는 “서술과 그림이 출애굽기 3~4장과 12~14장에 기록된 모세와 이스라엘 민족의 행동과 매우 유사하다”고 설명한다. ‘문들의 서’엔 물이 갈라진 삽화와 함께 “갈라진 물이 재결합했다”는 상형문자 기록이 있다.
저자는 한 발 더 나가 ‘윈드 셋 다운’ 현상을 홍해 도하의 과학적 근거로 제시한다. 윈드 셋 다운이란 시속 100~110㎞에 달하는 강풍이 장시간 불어 해수면이 낮아지는 현상이다. 그는 “몇몇 역사 기록이 해당 지역에 예기치 못한 엄청난 바람이 불었음을 증언한다”며 “1882년 영국 육군 소장 알렉산더 브루스 툴록도 홍해의 한 지류인 수에즈만 인근 만잘라 호수에서 이를 경험했다”고 말한다. 툴록은 일기에 “한밤중 분 광풍으로 호수가 갯벌이 돼 이튿날 현지인이 걸어 다닌다”는 기록을 남겼다.
다윗왕과 왕국의 실존을 증명해낸 ‘텔 단 석비’ 발견과 지형적 특성을 고려해 골리앗을 공격한 다윗의 전략을 분석한 내용도 흥미롭다. 그는 목동인 다윗이 산지 지형에 능숙해 비탈면과 구릉지대를 십분 활용해 달렸기에 강력한 추진력을 얻었을 것이라고 본다. 2016년 라기스에서 발굴된 제단 옆 석회암 변기 이야기 역시 이채롭다. 이 유물은 아합 왕조를 진멸한 예후가 바알 신전을 변소로 만든 성경 속 사건(왕하 10:27)의 물적 증거로 부상했다.
특기할 만한 점은 저자가 이들 연구 결과를 성서를 뒷받침하는 데 억지로 꿰맞추거나 강요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고고학자 중 성경을 사료(史料)로 보는 ‘최대주의자’와 이를 반대하거나 최소한으로 성경을 활용하는 ‘최소주의자’가 있는데, 저자는 이들의 입장을 함께 실어 독자 스스로 판단을 내리도록 돕는다.
고고학적 증거를 성경의 역사성을 담보하는 절대 요건으로 보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고고학적 해설이 성경의 기적을 평범한 자연 현상으로 격하할까 우려한다. 고고학자이자 목회자로서 보이는 저자의 겸손한 신앙도 인상 깊다.
“지금도 발굴되지 않는 유물이 우리 발밑에서 잠들어 있을지 모른다.…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고 해서 없는 건 아니다.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인식도 마찬가지다.”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