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한국은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 노인 인구가 5명 중 1명 이상인 국가가 됐다는 의미다. 노인 인구 비율은 앞으로도 꾸준히 증가할 전망이다. 초고령사회 진입은 노인 기준 연령을 높여야 한다는 논의에 불을 붙였다. 현재 노인 기준은 지난 1981년 노인복지법에서 규정한 ‘65세 이상’이다. 법 제정 후 44년이 흐르는 동안 노인 인구 비율도, 기대수명도 크게 달라졌는데 관련 논의는 지지부진했다.
1980년대 노인과 2025년 노인은 건강 상태나 재정 상황, 학력 수준 등 여러 면에서 차이가 있다. 전문가들은 노인 연령 상향을 포함해 노인 정책의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매년 80여만명씩 태어나던 베이비부머 세대 때와 달리 한국의 성장 동력은 고갈되고 있다. 건강한 노인이 더 오래 일할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 이는 젊은층의 부양 부담을 줄이는 길이기도 하다. 현재와 같은 혜택성 노인복지만으로는 한계가 뚜렷하다.
정부도 노인 연령 상향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올해 초 전문가 그룹인 ‘노인 연령 전문가 간담회’를 구성해 논의를 본격화했다. 정순둘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가 좌장을 맡아 지난 2월부터 다섯 차례 간담회를 진행한 뒤 “노인 연령을 70세로 단계적 상향하자”는 결론을 정부에 전달했다.
정 교수를 지난 20일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연구실에서 인터뷰했다. 그는 “나이보다 그 사람의 ‘기능’에 초점을 맞춰 연령을 논의해야 한다. 궁극적으로는 연령과 관계없이 일할 수 있는 미래로 나아가야 한다”며 “전문가들의 공감대는 형성됐고 이제 남은 건 차기 정부의 몫이다. ‘골든타임’이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 노인 연령 상향은 시대적 과제”라고 강조했다.
-70세라는 기준은 어떻게 도출됐나.
“기대수명, 건강노화지수 등 다양한 자료를 종합했을 때 70~75세를 제안하는 데이터가 많았다. 그중에서 사회적 합의를 끌어내려면 2년에 1세씩, 10년에 걸쳐 5세 정도를 상향하는 게 안정적이라고 판단했다. 또 70세로 기준을 잡더라도 5년마다 검토하는 절차가 필요하다고 봤다.”
-노인 연령을 상향하면 우려되는 부작용 중 하나가 ‘고용 공백’이다. 이를 보완할 대책은.
“노동 연령과 연금 수급 시기를 맞추는 게 가장 중요하다. 연금 수급 개시 연령은 2033년까지 65세로 상향될 예정이다. 반면 정년 연령은 60세에 멈춰있다. 5년의 공백이 생기는 거다. 일단 이 두 시기를 맞출 수 있는 구체적인 로드맵이 필요하다. 계속 고용제도 활성화, 은퇴 이후 재교육·취업 지원, 노인 일자리 확대 등 경제적 빈곤을 예방할 수 있는 제도별 설계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
-고령층의 고용 기간이 연장되면 청년 일자리가 위협받을 수도 있지 않나.
“청년 일자리에 아예 영향이 없지는 않을 거다. 그러나 고령층의 근로 욕구는 다양하다. 꼭 소득 활동을 위해서가 아니라 건강 유지를 위해서, 혹은 사회에 기여하고 싶어서 복지 개념의 일자리를 원하는 분도 많다. 현재 노인 일자리는 세금이 투입되는 정부 일자리가 대부분이다. 그러다 보니 노인의 소득을 보전해주는 형태의 일자리가 많은데, 그보다 민간형 일자리가 많이 발굴되면 좋겠다. 육아휴직자의 대체자로 시니어를 활용하는 등 고령층이 그동안 쌓아온 자신의 노하우를 전수할 수 있는 일자리가 민간에서 발굴돼야 한다.”
-노인 연령이 상향된다는 건, 결국 중·장년 기간이 늘어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래서 중·장년은 인생 2모작, 노년은 인생 3모작이라고 봐야 한다. 중장년의 은퇴 이후 삶이라고 하면 두 가지 선택지가 있을 거다. 자신의 경력을 살려서 비슷한 일을 하거나 아예 다른 직업으로 전환하거나. 그러려면 교육 시스템이 바뀌어야 한다. 고령 친화 대학처럼 캠퍼스에 젊은 학생들만 있는 게 아니라 중년이 와서 교육받을 수 있어야 한다. ‘계속 교육’이 필요하다. 더 나아가 ‘연령 통합’으로 가야 한다. 연령은 하나의 기준일 뿐, 결정적 잣대가 되면 안 된다. 사회 전반적으로 65세부터 노인으로 인식하는 국가는 우리나라와 일본밖에 없다. 그래서 노인 연령 상향 논의도 우리나라와 일본만 한다. 미국은 은퇴 연령을 폐지하지 않았나. 이처럼 나이는 통계에서나 중요한 게 아닐까. 같은 나이여도 사람마다 생산성과 근로 욕구가 다를 수 있다. 그렇다면 기능과 욕구 등 다양한 조건을 고려해 사회적 합의를 봐야 한다. 이처럼 웰에이징(건강한 노년 맞이)하는 모습을 좀 더 가치 있게 바라봐주는 사회가 되면 좋겠다.”
-‘노인 연령 전문가 간담회’를 이끌었다. 강조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사회의 지속가능성이다. 젊은층과 고령층이 상생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느냐를 고민했다. 노인 연령을 상향해야 한다는 것은 10년 전부터 나왔던 논의다. 그러나 그런 문제의식에서 앞으로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했다. 이렇게 정체돼 있으면 미래 세대의 부양 부담은 점점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서는 차기 정부가 민간 전문가들의 제안을 받아들여서 어떻게 제도화해야 할지를 분명하게 고민해줘야 한다. 미래 세대의 부양 부담과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고려하지 않으면 역사에 오점을 남기는 것과 다름없다. 미래 세대에게 희망을 주는 게 기성세대가 해야 할 일이다.”
박은주 기자 wn1247@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