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 슈거 음료가 유행이다. 단맛은 그대로인데 설탕은 없다. 기자도 종종 마신다. 맛은 있는데 죄책감은 덜하다. ‘혈당 스파이크’는 요즘 건강을 말할 때 ‘칼로리’보다 더 자주 등장하는 단어다. 식후 혈당이 급격히 오르면 피로 염증 체중 증가에 심혈관 질환까지 따라온다고 한다. 딱 한 잔 마셨을 뿐인데 몸은 롤러코스터를 탄다.
이런 걱정이 ‘헬시 플레져(Healthy Pleasure)’ 즉 건강함도 즐겁게 추구해야 한다는 소비심리로 이어졌고 음료업계는 앞다퉈 제로 슈거 제품을 쏟아내고 있다. 국내 제로 탄산음료 시장은 2022년 한 해에만 54.9% 성장했다고 한다. 이쯤 되면 단맛의 죄책감을 줄이기 위한 집단적 위장이랄까. 어쨌든 우리는 단맛을 포기하지 못했다.
하지만 제로라고 다 좋은 건 아니다. 하버드대와 매니토바대 연구진에 따르면 인공 감미료가 뇌의 보상 회로를 건드려 장기적으로는 실제 당 섭취를 늘릴 수 있다. 일리노이대 연구진은 인공 감미료가 뇌를 교란해 인슐린을 부르짖게 만든다고 했다. 단맛은 있지만, 그에 걸맞은 에너지원은 없다. 뇌는 배부른 줄 착각했고 그 착각은 몸의 균형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거다.
제로 음료의 비밀을 파헤치며 문득 떠오른 단어가 있다. ‘제로 성도’다. 신앙의 단맛은 즐기되 칼로리, 즉 책임과 헌신은 부담스럽다고 할까. 출석은 하지만 등록은 안 하고 이름은 남기지 않는다. 단톡방에도 없다. 그러나 이 익명성은 공동체를 흐트러뜨릴 가능성이 크다. 제로 슈거가 뇌를 착각하게 하듯 교회는 이들을 구성원이라 믿고 사역을 설계하지만, 실제론 존재하지 않는 연결 위에 구조를 세우는 셈이다. 착각은 시스템의 균열로 이어진다.
지난 주일 예배를 마치고 나오는 길에 낯익은 부부를 마주쳤다. 과거 다른 교회에서 함께 신앙생활 하던 이들이었다. 최근 우리 교회로 옮겼다고 했다. 자녀 교육 문제, 그리고 이전 교회에 대한 실망이 이유라고 했다. 그런데 이내 “등록은 안 하려 한다”고 말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등록하면 피곤해지잖아요.”
그 말에 내 혈당보다 혈압이 먼저 솟구치는 기분이 들었다. 이들은 이전 교회에서 누구보다 헌신적이었던 이들이었다. 기자와 유년 시절을 함께한 친구들도 비슷하다. 중고등부 회장, 청년부 임원, 어떤 이는 신학대까지 진학해 전도사 사역까지 했다. 그런데 지금은 “나는 교회 안에서 노바디”라고 말한다. 제로 성도들의 마음도 마냥 달달하진 않다. 미등록으로 집 주변 교회를 나간다는 친구는 “예배만 드리고 곧장 집에 간다”며 “이런 모습으로 아이들에게 신앙을 물려줄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도 했다. 또 다른 친구는 “코로나 이후 봉사를 멈추자 교제도 끊겼다”며 “다시 정착하기가 어렵다”고 털어놓았다.
이요한 서울 기쁨의교회 목사는 최근 설교에서 공동체가 빠진 신앙생활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이 목사는 “성도 개개인은 분교이고 교회가 본교”라고 말했다. ‘건물이 아닌 사람이 성전’이라는 흔한 MZ 성도들의 레토릭에서 간과하고 있는 점을 지목한 셈이다. 그는 “건물마다 서로 연결되어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너희도 함께 지어져 간다”는 에베소서 2장 말씀을 인용하며 “성전은 혼자 만들 수 없고 함께 지어져 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신앙이 개인화될 수는 있어도 공동체 없이 온전해질 수는 없다는 게 이 설교의 핵심 메시지다.
청년 시절 기자에게 교회는 삶의 중심이었다. 축구와 밥, 예배와 수련회가 신앙의 네 박자였다. 그때의 공동체는 설탕 같았다. 그러나 지금은 에너지원 없는 단맛만 남았다. 책임은 피곤으로, 교제는 피로로 변했다. 이름 없는 이들은 늘었지만 그 이름을 부를 사람은 줄었다. 교회는 어느새 이름 모를 관객들로 가득한 무대가 됐다.
예수는 제자들에게 누룩을 조심하라 하셨다. 겉으론 아무 일도 없는데 안에서 반죽 전체를 부풀게 하는 누룩. 공동체 안의 익명성도 그런 누룩일 수 있다. 제로 슈거가 식욕을 자극하듯 겉으론 건강해 보이는 교회도 안에서는 허기를 키울 수 있다.
신앙은 소비가 아니다. 삶이다. 이름 없이 존재할 수는 있지만, 책임 없이 성장할 수는 없다. 신앙 안에서 우리는 노바디(nobody)가 아니라 섬바디(somebody)여야 한다.
손동준 기자 sd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