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한때 승용차 안에 두꺼운 지도책을 갖고 다녔다. 처음 가는 장소를 찾아가려면 지도책을 펼쳐 목적지로 가는 대략의 큰길을 가늠하고, 목적지 근처의 작은 길에서는 길을 잘못 들 때마다 어김없이 뒤적여야 했다. 마침내 목적지에 도착한 순간, 안도와 함께 찾아온 것은 보람이였다. 그렇게 쌓인 경험을 통해 그 길은 나의 것이 됐다. 내비게이션이 등장한 이후는 신천지였다. 주소만 찍으면 어떤 길도 막힘이 없다. 막히는 길도 피해갈 수 있도록 해주고 심지어 도착 시각까지도 예측이 가능해졌다. 내비게이션에 몸을 맡긴 후 우리는 방관자가 됐다. 우리가 어디 있는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생각하지 않는다. 결국 우리는 내비게이션이 없으면 아무것도 못 하는 인간이 됐다.
기술과 문화의 상호 작용을 꾸준히 연구해 온 저자는 디지털 기술이 인간의 직접적인 경험을 어떻게 변화시키고 있는지를 탐구한다. 자신의 감각, 신체, 그리고 판단까지도 기술에 맡겨버리는 과정에서 우리가 서서히 잃어가는 것은 바로 인간다움이라고 말한다.
디지털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줄어든 경험 중 하나는 대면 접촉일 것이다. 요즘은 식당에서도 키오스크를 통해 주문하고 계산까지 하는 곳도 있다. 대면 접촉이 중요한 병원에서도 서서히 비대면 원격 진료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편의성이라는 이름으로 인간적 접촉의 기회를 잃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2013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금문교는 76년 동안 징수원을 통해 통행료를 받던 시스템을 자동 시스템으로 대체했다. 이를 통해 시는 800만 달러(약 111억원)의 비용을 절감했다고 홍보했다. 저자는 자동화 비용을 평가할 때 거의 포함되지 않는 것은 질적 손실이라고 말한다. 바로 징수원의 인사와 미소다. 18년 동안 금문교에서 일했다는 한 징수원은 언론 인터뷰에서 “저희의 미소는 때로 사람들이 그날 처음으로 마주하는 미소였을 것”이라면서 “컴퓨터가 그 부분까지 대체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인간적 접촉이 왜 필요한지는 수치로도 증명된다. 미국의 한 상담센터에서 진행된 연구에서는 직원들이 동료들과 직접적인 상호작용을 많이 하는 센터가 그렇지 않은 곳보다 생산성이 두 배나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직원들끼리 우연히 만나 대화를 나누면서 업무적 경험을 공유하고 생각지도 못한 아이디어가 떠오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 픽사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나 글락소스미스클라인 등의 기업에서도 직원 간 대면 접촉을 늘리기 위해 사무 공간을 재배치하기도 한다.
우리는 직접 만나 대화를 나눌 때 표정을 본다. 표정은 많은 것을 말해주는 ‘비언어적 신호’다. 인류는 언어 이전에 표정과 몸짓으로 소통했다. 저자는 비언어적 신호와 상호 신뢰의 연관성에 대한 흥미로운 연구 결과도 소개한다. 미 코넬대 제프 행콕은 “문자나 이메일, 화상대화를 통한 ‘매개된 의사소통’이 우리를 더 능란한 거짓말쟁이로 만든다”면서 ‘동기 향상 효과’라는 용어를 만들었다. 상대방을 마주한 상태라면 미세한 경련이나 수상한 눈의 움직임으로 진실이 드러날 수 있기 때문에 거짓말을 망설이게 된다. 하지만 행콕은 기술을 매개로 의사소통을 하면 이런 효과를 기대할 수 없기 때문에 거짓말을 할 동기가 더 커지고 거짓말이 성공할 확률도 더 높아진다고 강조한다.
손 글씨가 사라지는 것도 디지털 시대의 대표적 현상이다. 우리는 펜을 사용하는 대신 키보드를 치거나 화면을 터치하고 스와이프(swipe)하는 것에 익숙해졌다. 그러면서 가장 기본적으로는 잉크와 종이가 주는 감각적인 경험, 손 글씨가 주는 시각적 즐거움을 잃었다. 손 글씨가 사라지면서 나비 효과도 생겼다. 바로 인지 능력이 퇴화하는 것이다. 5세 아동을 대상으로 타이핑, 덧쓰기, 손 글씨로 글자와 도형을 가르치는 한 실험에서는 의외의 결과가 나왔다. 뇌를 MRI로 스캔했을 때 뇌의 읽기 회로가 글자 인식에 동원된 것은 손 글씨를 이용했을 때뿐이었다. 연구진은 “발달 초기인 아이의 경우 손 글씨가 읽기의 기초가 되는 뇌 영역의 문자 처리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결론짓고, “손 글씨는 아이의 읽기 능력 습득을 촉진한다”고 덧붙였다. 읽기와 쓰기에 어려움을 겪는 초등학생을 그룹으로 나눠 성적을 올리기 위한 다양한 활동을 한 결과, 손 글씨 쓰기에 가장 많은 시간을 투자한 집단의 성과가 가장 좋았다는 연구도 있다. 손 글씨 능력이 향상된 집단은 단어 인식과 읽기 능력이 좋아졌고, 공부한 내용을 잘 기억했으며, 아이디어를 더욱 잘 표현했다고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들이 학습에 더 재미를 느꼈다는 점이었다.
저자는 경험이 사라진 시대의 풍경을 다양하게 보여준다. 여행이 더 이상 새로운 경험을 위한 것이 아니라 SNS에 공유하기 위한 콘텐츠 생산의 수단으로 변질되는 모습을 비판적으로 바라본다. 기다림의 순간을 스마트폰으로 채우며 내면의 사색과 주변 관찰의 기회를 잃고 있는 우리 자신의 모습도 놓치지 않는다. 사람들의 자발적 만남과 상호작용이 가능한 물리적 ‘장소(place)’가 가상의 ‘공간(space)’으로 대체되는 광경도 예리하게 포착한다. 경험은 특정한 시간에 특정한 공간에서 자신의 육체를 통해 즐기는 것이다. 점점 우리는 몸이 있다는 것을 잊고 산다. “여기는 우리가 살고 싶은 곳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저자는 “경험의 소멸은 불가피한 것이 아니다”면서 “그것은 선택”이라고 말한다.
⊙ 세·줄·평 ★ ★ ★
·시의적절한 내용을 흥미롭게 담았다
·디지털 시대에 우리가 잃고 있는 것은 무언인지 생각하게 만든다
·기술 발전의 긍정적인 측면도 함께 고려하는 균형 잡힌 읽기가 필요하다
맹경환 선임기자 khmaeng@kmib.co.kr